고등학생 때에는, 수능이 끝나고 경험하게 될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 로망은 돈과 취업준비라는 칼날에 펑 하고 터져버렸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에 다시 환상이 생겼다. 돈도 적당히 주면서 내가 자아실현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을 거라는 유니콘 같은 환상. 주변의 '카더라' 통신을 타고 많이 들어보기는 했으나 누구도 그 존재를 실제로 본 적은 없는 직장. 나의 유니콘은 하루 14~15시간, 주 6일 근무, 월급 세전 120만 원의 현실에 정강이뼈를 제대로 걷어차이고 영영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고도 다시 꿈을 꿨다.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며 유학도 준비해보고,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공익적인 일을 하겠다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기도 했다. 집에서의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했고, 그 과정에서 떨어진 신체적·정신적 체력은 집중력 저하와 전투력 감소로 이어졌다. 연애는 했지만 돈이 없어 데이트 비용을 못 내니 당시 남자친구에게서 맨날 얻어먹기만 하는 애로 오해를 받았고, 부모님이 백화점 VIP인 그에게 나의 사정을 차마 말할 수 없어 외로웠다.
그렇게 풋풋해서 아름다웠던 나의 환상들이 밟히고 잘리고 뽑혀나가 종내에는 더 이상 싹을 틔우지 않았다. 200 겨우 넘는 월급을 주면서 당장 내년에 회사가 어떻게 될지 확실할 수 없는 지금의 직장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버틴다. 다른 직장이라고 해서 완벽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4평 남짓한 원룸이 좁고 답답해 만족스럽지 않아도 버틴다. 다른 집이라고 해서 완벽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환상을 버리니 더 이상 꿈은 꾸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서 다이어리를 빼곡 채우던 원색의 열정이나 기세는 없어졌지만,
가지지 못한 무언가보다는 이미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마음이 편안해졌고,
완벽함이라는 회초리를 거두니 뭐든 가볍게 시도해볼 수 있게 되어 일상이 경쾌해졌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을 빼니까 일이 잘 풀렸다. 마음의 여유는 내가 책을 가까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우연히 접한 책 덕분에 비건지향적인 삶을 시도해보게 되었다. 지금의 애인도 결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부단히 노력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가 실수해도 웃어넘길 수 있는 적당한 온도의 품을 가지게 되었다. 이 브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 악물고 지원할 때는 계속 떨어뜨리더니, 집에 잠옷바람으로 누워 '이번에 떨어져도 또 쓰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타자기를 두드렸는데 합격 메일이 와있었다.
나의 20대를 쏟아부어 그토록 쫓았던 환상은 뭐였을까. 환상은 그 대상이 완벽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완벽'은 '흠이 없는 옥'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흠'은 뭘까. 네이버 표준국어사전에서 '흠'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1. 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2. 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3. 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
이지러지고, 깨지고, 상하고, 모자라고, 잘못되고, 부족한 부분이 '흠'이라고 한다. 자가용을 샀을 때 사람들은 보통 초반에는 애지중지하며 기계 세차의 편리함을 기꺼이 포기하고 손세차를 자청해 극세사 걸레로 닦아주고 커버를 씌워주며 '흠'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다가 하루, 한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면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흠이 아니라면 웬만한 상처들은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흠은 흠도 아니지 뭐.' 하며 툴툴 털고 넘긴다. 흠에 대한 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흠에 대한 기준이 바뀐다는 건, 완벽에 대한 기준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 직장, 급여, 주거환경, 외모, 저축액, 기타 등등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완벽에 대한 기준을 바꿔왔다. 억울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이젠 괜찮다. 그러니 혹시 스스로 설정해놓은 완벽의 조건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사안이 있다면 관점을 달리해보는 시도가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을 누군가는 포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에 대한 발견이자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8-9년 전에 유행했던 과자가 있었다. 망치과자라고 불렀던가. 엄청 딱딱한 둥근 모양의 과자인데 망치로 깨뜨려야 먹을 수 있었다. 깨기 전에는 어떻게 먹나 싶었는데 깨서 먹어보니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고소한 게 참 맛있었다. 인생도 이 망치과자와 같은 게 아닐까. 딱딱하고 견고하게 형성되어가는 우주를 망치로 깨부수는 순간이 있어야 성장의 달콤함도 맛볼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