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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 Jun 13. 2021

일 년에 열두 번 이상 보고 싶은 사람

내향적인 사람이 감동받은 말




지난주 금요일에 전 직장동료를 퇴사하고 두 달 만에 만났습니다. 퇴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졌던 술자리에서, 앞으로도 계속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거듭 나눴었지만, 그리고 그 말들이 서로 진심이길 진심으로 바랐지만, 막상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 우리라는 걸 알기에 어쩌면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을 내심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뜻 먼저 연락을 해준 동료. 조심스러우면서도 반갑게 보내온 그의 카톡 메시지가 참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강렬했던 해가 슬슬 힘을 잃어가고 시원한 밤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시간. 생맥주가 참 맛있는 시간. 저녁 6시 반에 만났습니다. 어쩜 텔레파시가 통했던 걸까요. 흰 티에 베이지색 바지. 미리 말을 맞춘 듯이 옷 색깔이 똑같은 서로를 보고 당황하다가 풋 웃고 말았습니다. 회사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도 꼭 다시 보고 싶다는 서로의 바람이 그렇게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발현된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내가 떠난 이후의 회사는 어땠는지 라는 비교적 쉬운 질문부터 시작해서 그동안은 "직장동료"라는 네임택을 달고 있었기에 쉽게 물어보지 못했던 아주 개인적인 질문들까지, 이야기는 엄청난 속도로 확장해나갔습니다. 어쩌다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됐지, 되짚어보면 그 이유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새 우리는 물 흐르듯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과 가정폭력까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애인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는데 서로의 앞에선 참으로 담담하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가 말하던 중 선생님한테(서로에게 쓰는 호칭) 상처 준 건 없었을까요?"
"어떤 선택을 하든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이 가게 화장실 핸드워시 향이 너무 좋아요." 


저는 이런 그의 배려심 깊은 말과 섬세한 태도에 녹아버려 제 마음의 빗장을 모두 풀어버렸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애정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손편지를 쓰는 것처럼 말하던 그. 서로 다른 인생과 선택과 생각을 존중하는 대화를 이끌어내는 그를 보며 나는 한참 멀었구나, 많이 반성하고 배우고 성장해야겠구나를 생각함과 동시에 그를 알게 되어, 그와 이렇게 멋진 한 편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그와 헤어진 뒤에도 며칠 동안이나 향기처럼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을 1년에 12번 이상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 같은 사람을 앞으로 이 직장에서 더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여기서 일을 더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향적인 그가 해준 이 말이, 역시 내향적인 저에겐 더없이 따뜻한 말로 들렸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한 달에 한 번 기꺼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겠다는 그의 말이 얼마나 큰 애정을 담고 있는 다짐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에 부흥하고 싶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다음번에 만났을 땐 더 멋진 사람이 되어있고 싶다, 그래서 그가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나에게 말해줬을 때 마음 깊이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를 참 오래 알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날을 위해 일부러 야근수당을 모아뒀으니 본인이 밥값을 다 내게 해달라는 그의 예쁜 마음을 감사히 거절하고 더치페이를 했던 건, 다음번에도 또 그 다음번에도 계속해서 만나려면 어느 누군가에게도 어떤 식으로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제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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