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했죠.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입사했다는 게
책은 소리보다 활자 집중력이 더 높은 나로선 여러 사람과 사건이 얽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각자의 선택이 삶과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살 수 있게 해줬고, 어이없이 직장도 구해줬다. (1편에서)
첫 회사에서 주로 만든 책은 인문학 책, 그중에 예술 분야 책을 만들었다. 그때 나는 원서의 번역문이나 국내 저자의 원글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비문을 고치는 에디터로 훈련받았다. 한마디로 교정교열이 중요한 회사였다.
그동안은 싸이월드에서, 친구들과 채팅에서 열심히 맞춤법 파괴를 해왔던 나는 출판사에 입사하자마자 생활습관부터 고쳤다.(조아? 좋아!)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책 만들 때 내 습관이 들어갈까 봐 겁났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되도록 지키려고 했고, 친구랑 채팅 중에도 애매한 단어가 튀어나오면 바로 국어사전을 뒤졌다. (희안하다? 희한하다!) 평소 생활까지 바른 뼈집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스위치 전환에 드는 에너지를 아끼고 싶었다. 효율 중시 성향이 등장한 탓이겠지.
아주 약간의 의심만 들어도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을 뒤졌고, 우리말배움터에 접속해서 확인했다. 그래도 궁금함이 안 풀리면 국립국어원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논의가 필요하면 편집장님께 쪼르르 달려갔다. 1교 볼 땐 하루 대여섯 번은 기본이었다. 눈치 없고 책 만드는 게 마냥 재밌는 신입은 남들도 나처럼 궁금한 거 이야기 나누면서 책 만드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
그곳에서 책을 쓰시는 분들 대부분은 어떤 분야에 한 획을 그으신 대가들이었다. 그분들이 쓰신 예술에 대한 글은 알 듯하면서도 모를 때도 있었다. 국내서는 그래도 내가 공부를 하면 거의 궁금증이 풀렸고, 꼬인 문장을 푸는 열쇠를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번역서였다. 십중팔구는 번역 중에 발생한 문제였다. 예술 분야 전문가가 쓴 원서를 예술가(번역 전문가가 아닌) 선생님이 번역하시며 한국어에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단어들은 다 들어가 있는데 주술 호응이 되지 않아 한국말로는 알 수가 없는 문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독자라고 이해할까 싶었다.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의 원문을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번역서를 만들 때는 늘 원서를 나란히 펴놓게 되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원서를 읽고 번역문을 읽은 다음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원문을 읽고 번역문을 보면, 번역자가 왜 그렇게 번역을 했는지 수긍이 됐다. 머리 한쪽에 영어 원문이 있으면 희한하게 한국어가 비문이어도 영어 문장 속 내용으로 이해가 갔다. 하지만 독자들은 영어 문장을 나란히 두고 볼 수 없으니 나는 그걸 한눈에 읽히는 한국말로 조심스레 수정해야 했다. 번역자의 의도와 원문의 진짜 의미를 모두 살리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마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원작자와 한국에 계시는 번역자 그리고 내가 함께 협업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원문과 최종 문장을 비교하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 같고 그 과정에 내가 있다니 뿌듯했다.
원서를 한 문장 한 문장 짚어가며 일하기까지 한 이유는 또 있었다. 내 첫 사수는 영어 원서에 있는 쉼표까지 고스란히 살리기를 바랐다. 의역해서 쉬운 문장을 만들기보다 되도록 원문을 그대로 옮기라고 가르쳤다. 원문을 되도록 고스란히 살리되 번역투는 아니고 한눈에 이해가 되는 문장. 난 매일 가장 좋은 문장을 찾는 탐정이 되어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별게 다 즐겁고 재미있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은 전부 다 재미있었다. 어순조차 한국어와는 다른 4-5줄짜리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쉼표까지 살려가며 꽤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면 잔뜩 꼬인 매듭을 푼 것 같은 쾌감이 있었다. 나는 참 부지런하게도 한 문장 풀고 즐겁고, 한 문장 풀고 뿌듯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표기법을 찾아 나서는 것도 나는 좋았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의 이름이 미국 현지에서 어떻게 불리고 있는지 하나하나 찾아내 싣는 건 꽤 재미있었다. 조지프인지 요제프인지, 내가 제대로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예술가가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인덱스를 만드는 것도 좋았다.(물론 지금은 아니다) 책을 모두 완성하고 페이지를 확정한 상태에서 인덱스를 만들 키워드 리스트를 만들고 ctrl+f로 그 키워드가 어디 있는지 찾아서 일일이 페이지를 적었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발전해서 좀 더 빨라졌지만 그땐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600쪽 넘는 예술서를 작업할 땐 1주일이 꼬박 걸렸다. 그래도 처음 하는 모든 일은 다 공부 같았다.
(출판사 기준으로) 큰 회사에 있다가 온 선배 한 명이, 내가 만든 책을 언급하며 혼자 편집했느냐고 했다. 1년 반쯤 다녔을 때였나… 그렇다고 하자, 규모가 큰 출판사에서는 처음 6개월은 교정지 대조와 복사만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1년 정도 되어야 책을 제대로 맡는다고. 그에 비하면 난 1년 반 사이 부지런히 성장한 기분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그다지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너네 팀에서 그 책 나온 거 봤어. 그거 누가 편집했어?’라고 물어서 ‘저요….’라고 대답했을 때 거짓말! 네가?라는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나는 냉큼 ‘다른 분들도 많이 도와주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아~ 그럼 그렇지… 나는 큰 출판사에 다녔는데 거기서는 블라블라…’)
그렇게 2년쯤 지나자 사전을 찾는 횟수가 확 줄었고, 국립국어원에 전화하지 않아도 되었다. 맞춤법 고민을 하는 시간이 줄자 교정교열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한편으로 불안감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