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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Sep 17. 2022

워킹맘의 육아,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적은 수의 병사로 싸워 이기는 법'을 궁리해야 하는 이유 

목숨, 그보다 더한 것을 걸어서라도 이겨야 하는 단 하나의 전쟁. 그러나 전투에 승산이 없어 보인다. 적에 비해 아군의 숫자는 적고, 아군의 병사 중 지친 자도 다수 확인된다. 전투는 길게 이어지는 중이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설상가상으로, 아군의 사기도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냥 백기를 들고 다 포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옵션이 아니다. 당신이 사령관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적은 수의,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이대로 전장으로 몰아넣겠는가? 아니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에서 이길지를 치열하게, 머리 터지게 고민하지 않겠는가. 1%라도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실행하려 하지 않겠는가. 


나는 워킹맘이다. 그동안의 육아는 감히 "적은 수의 군사로 치르는 전쟁" 같았다고 말하고 싶다. 6년간 육아의 전장에서 구르고 살아남으면서(?) 나는 육아야말로, 특히 직업과 양립해야 하는 육아야말로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전장의 형세가 변하기에 -영아, 유아,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그 이후까지- 전략의 재점검, 피드백, 피드 포워드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제갈량처럼 탁월한 전략가도, 클라우제비츠처럼 세기에 남을 군사이론가도 아니다. 육아에 대한 전문성도 전혀 없다. 하지만 초보 엄마, 초보 워킹맘으로 고민하고 구른 그동안의 생각과 경험들이 새로 전략을 세우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남은 에너지를 모아 글을 써본다. 




"워킹맘의 육아가 왜 '적은 수의 군사'로 치르는 전쟁이라는 건가요?"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직접 경험해 본 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험해 본 바, 워킹맘들은 '3 부족 현상'을 공통적으로 호소했기 때문이다. 하나씩 간단히 살펴보자.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나는 워킹맘이 되고, '시간 거지'라는 단어와 친숙해졌다. 나도 많이 쓰고, 워킹맘들로부터 많이 듣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 아이 낳기 전에도 시간은 늘 부족했다. 야근하는 날도 꽤 많았고, 퇴근 후에도 외국어 공부, 독서를 하다 보면 여유 있게 잘 시간도 부족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의 시간 부족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야이 기이다. 기본적으로 바쁜 한국인의 일상에 '육아'라는 아주 막중한 과제를 얹는 것이다. "힘든 투잡을 시작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게 느껴진다. 


또 부족한 것은, 에너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인생이 쉽고, 뇌 용량이 남아돌았던 사람, 있을까? 회사에서 어떻게 더 성과 낼까? 상사, 동료, 동업계 사람들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까? 딸(아들), 아내(남편), 며느리(사위)로서 도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원래부터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나는 사실 결혼하고, 시댁행사가 늘어나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웠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정말, 에너지가 쭉쭉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아이 없는 신혼생활에서 늘어났던 신경 쓸 일들은 마치, 게임의 튜토리얼이랄까, 수영 전 몸풀기 운동이랄까, 그런 정도의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출산휴가 기간 동안 처음 배웠던 수유 횟수 및 간격 조정하기, 아기 옷 세탁하기 등등도 정신없었지만, 복직한 후 신경 써야 하는 것들도 가볍지 않다. (부연하자면, 해야 하는 일들 하나하나는 너무 사소하고, 쉬워서 어디다 말도 못 할 것들인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조율해야 하는 것이 꽤 버겁다)


매일 같이 두 아이의 알림장을 확인하고, 준비물 챙기고 가방 싸고, 입을 옷 정리해두고,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체크한다. 학습지 진도 체크, 학원 픽업, 식사량 체크 및 영유아 검진 일정 등도 대충 사이사이 끼워 넣다 보면 그런 작은 일들이 모여 꽤나 많은 두뇌 용량을 요구한다. 누가 그랬던가. 멀티태스킹 능력이란 없다고. A 업무 하다가, B 업무 하는 것은 분절될 뿐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멀티태스킹을 상시적으로 하는 사람은 깊이 있는 사고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더라, 뭐 그런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워킹맘이 된 이후, 피곤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사소한 일들로 심력이 소모된다는 점이다(그래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아이들 낳은 걸 후회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현재 시점에서 나의 에너지 소모량이 크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워킹맘에게 부족한 건, 자존감이다. 요즘 여자들, 대부분이 고등교육받고 직업인으로서도 충분히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똑순이로 컸다. 공부 잘하고, 일 잘하고 그런 걸로 칭찬받고, 존중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자존감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내 자아효능감의 대부분은 그렇게 직업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육아의 세계에 들어오니, 내가 못하는 것, 경험한 적 없는 것투성이다. 살림도 왕초보인데, "여자가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사회에 남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육아, 살림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지적을 꽤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육아와 살림을 잘 못하는 것 같은 나에 대해 자책도 많이 하고, 죄책감도 느꼈다. 그리고 워킹맘의 비애, 애환을 대다수가 경험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사회의 디폴트 값(기본 옵션)에 대해 억울함과 분노도 많이 느꼈다. 그런데 뭐, 내가 그렇게 느낀다고 사회구조나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더 좋은 엄마나 더 좋은 살림꾼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나의 객관적 능력치는 이미 설정되어 있는 값 그대로이고, 더 우울하냐, 덜 우울하냐가 문제 될 뿐이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으로는 어차피 내가 원하는, '아이 엄마 티가 나지 않는 유능한 직원', '아이들을 집에서 맞아주는 가정적인 엄마', '야무지게 요리, 청소, 빨래, 돈 아껴서 장보고, 남는 돈으로 재테크도 하는 살림꾼 아내' 3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없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최선을 다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만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오히려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이 조금은 받아들이기 쉬워졌다. 그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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