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라노 Sep 10. 2022

산후우울증이라나, 뭐라나?

이토록 시시한 병명에서 헤어나기가 힘들었다. 

특목고. SKY. 변호사. 대기업 입사. 내가 30살까지 쌓아 올렸던 안전장치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소위 말하는 '범생'이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던지라 어려서부터 어른들께 칭찬을 많이 들으면서 컸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21세기 여성리더가 되어라!' '마음먹으면 못할 것이 없지. 대기업 임원이든, 전문직이든, 그 이상이든!' 등등의 고무적인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는 새 오만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마음먹고 계획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잘 해낼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 그 막중한 일의 무게를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설마 내가 못하겠어?' 하며 쉽게 생각했다. 남편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자, 나는 바로 그에게 제안했다. 


"이제 아이를 가질 때가 되었어. 임신을 시도해 보자. 할 수 있지?"

"헉, 괜찮겠어? 여자 몸에 엄청 무리가 간대. 힘들 텐데.."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는데. 하면 되지! 어차피 다 케바케 사바사라 미리 걱정한다고 대비가 되는 것도 아니야."

"그래, 그럼, 여보가 괜찮다면.."


지나가면서 걸음마하는 아이만 봐도 꿀 떨어지는 시선을 보내는 남편이 중요한 순간에 내 결정을 존중해 주고, 내 몸을 먼저 생각해 주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어차피 아이를 갖고 싶다고 '결심'을 하는 데까지가 나와 남편의 일이지, 그다음부터 이어질,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는 일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서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난관을 헤치고 나온 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임신, 출산의 과정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마음먹자마자 다음 달에 바로 임신이 되었고, 입덧은 심하지 않았다. 아이는 태아검진 때마다 "특이사항 없음" 소견을 받았고, 다소 무리해서 일하는 엄마의 일 욕심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자연분만을 하다가 실패해서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바람에 다소 몸이 힘들기는 했지만, 못 버틸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도 마취도 안 한 채로 턱의  찢어진 상처를 10 바늘 정도 꼬매는 수술을 받기도 했고, 초기지만 암수술도 받았던 나니까! '나는 잘 해내고 있어!'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두 달.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잘 해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잘 해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그때 우리는 25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뷰가 퍽 아름다운, 남서향 아파트였다. 분유 토가 묻어있는 티셔츠와 아직 다 꺼지지 않은 배를 감당해줄 임산부 츄리닝 바지를 입고, 아이에게 분유를 주다가(나는 아이의 식사량을 감당하지 못해 혼합수유를 했다) 문득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여름을 맞아 산능성이에는 싱그러운 연둣빛이 가득했고, 맑고 밝은 푸른 하늘 아래로 눈부시게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우유 속에 모카치노가 마시고 싶어.'

'하지만 나갈 수 없겠지. 게다가 수유 중에는 카페인 음료는 마실 수 없어.'

'그냥 편의점만이라도 가고 싶어. 그냥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백일도 안된 애기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안돼. 삼칠일 동안은 손님도 가려받는다잖아. 두고 나갈 수도 없잖아.'

'아파트에서 20m도 안 떨어져 있는데. 창문 너머로 저렇게 GS25가 보이는데.'

'며칠만 참아. 아니면 이따 남편 퇴근하고 가.'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 저렇게 바깥 풍경이 예쁜데..'


한참 내적 갈등을 겪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방금 뭐지? 내가 이렇게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나? 스스로 의지력, 근성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스스로 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마치 선언하듯 말했다. 


"여보. 얼른 옷 갈아입고 와서 준서 좀 안아봐. 나, 산후우울증인 것 같아."

"어이고, 오늘 좀 우울했어?"

"이거, 심각한 문제야. 나 오늘 25층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니까?"

"아이고, 그랬어? 많이 힘들었구나. 준서는 분유 언제 먹었어?"


놀랍게도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마치 '오늘 보고 통과 못했어' '오늘 바빠서 저녁도 못 먹었어' 정도의 대화를 했을 때와 거의 똑같은 반응이었다. 순간 좀 외로웠다. 이 다정한 남자는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우리 아이는 둘이 사랑해서 낳은, 둘의 아이인데 남편은 성과만을, 나는 후폭풍만을 가져가는 것 같은 억울함이 차올랐다. 그것도 호르몬에 의해 증폭된 형태로. 




나는 지금도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첫째를 낳고 복직하기 전까지의 몇 개월을 꼽는다. 사람들은 첫째도 돌봐야 하고, 둘째도 길러야 했던 시기가 더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데. 아니다. 나는 흰머리 숭숭 나도록 하루에 16시간씩 책상머리에 앉아있었던 변호사시험 전의 몇 개월 보다, 응급실을 전전하며 회사를 다니고 첫째를 케어해야 했던 둘째 임신기간보다, 두 아이를 돌봐야 했던 두 번째 육아휴직 기간보다 첫 번째 출산휴가 기간이 힘들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동안 쌓아 올린 내 모든 것이 부정되고, 내가 엄마로서 해내는 많은 것들이  '기준 미달' '마뜩잖은 것'으로 여겨지던 그 몇 개월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임신, 출산을 경험하는 친구, 후배, 지인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몇 가지 말들은 귓등으로만 들으라고 꼭 조언해 주고 싶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들. (참고로 어디서 들었다는 이야기들 아니고, 내가 직접 여러 번 들은 이야기들이다.) 


"막달까지 회사 다녔으면 아이 태교도 제대로 못 해주셨겠네요. 아이 정서는 뱃속에서부터 형성되는 건데."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모유죠. 사정이 된다면 '완모'(완전 모유수유, 분유 x)해야죠. 아무리 분유가 좋다한들 모유보다 좋을 수 있나요. 물론 엄마가 젖이 안 나온다거나, 뭐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아이 태어나고 36개월은 엄마가 붙어있는 게 가장 좋죠. 초기 애착형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괜히 있겠어요. 엄마들이 돈 몇 푼 번다고 일찍부터 회사 다니는데, 아이 정서 망가지는 거 생각하면 마이너스예요." 


산후우울증이 갑자기 듣게 된 이런 말들 때문에 왔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건 의학자들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직업인으로,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이, 마치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만 조금 덜 들었어도 더 평안하고 행복하게 육아에 매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저출생의 시대, 어쩌면 차가운 말들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는 훌륭하다'를 보며 육아를 배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