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또 따져보자
혼자서도 즐겁고 충만할 수 있다면 함께 할 동반자는 필수적이지 않다. 좋은 사람이 있다며 자꾸 만나보라고 하는 것은 괴롭힘에 가까울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시간, 체력, 자원이 늘 부족한 현대사회에서 취미는 원한다면 가지고, 필요 없으면 없이 살아도 무방한 보너스 같은 존재다.
반복되는 일상이 공허해서 취미 하나 가져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찰떡같이 잘 맞고 재밌는 취미를 잘 찾는지 궁금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취미를 찾아나가는 과정과 소개팅은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
소개팅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 매우 어려운 것처럼, 오랫동안 즐길 나만의 취미를 찾는 과정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게도 취미로 남게 된 것과 단순한 체험으로 그치게 된 활동들이 있다. 지금처럼 가야금, 클래식기타, 보컬, 헬스와 필라테스, 독서와 글쓰기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고 배움을 지속하기 되기까지 당연하게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소개팅에서 잘 될 확률을 높이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처럼, 여러 활동들을 접하면서 그중 내가 좋아하고 매력을 느끼는 취미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취미가 될 만한 후보들을 소개팅에서 만났다고 상상해 보면 선택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지인을 통해 소개받기로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기 전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서로에 대한 평가전이 시작된다. 인스타 계정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면밀히 탐색해 가능한 많은 사전 정보를 입수하려 애쓴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어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지 등을 살펴본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일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일상적인 주제로 담백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아 보며 성격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흥미가 생긴 취미를 처음 탐색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 프리 다이빙처럼 바로 시작하기에는 심적, 경제적 부담이 있는 활동은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 관련 정보를 최대한 많이 찾아본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경험담과 정보들이 쏟아진다. 정보를 찾아보며 간접 경험을 해보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거나 나와 잘 안 맞을 것 같다면 굳이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소개팅처럼 주선자의 눈치나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가지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안하다.
드디어 상대와 만나게 되었다면, 가장 중요한 건 느낌이다. 자꾸 생각이 나고 계속 잘해보고 싶은가?
“첫 만남에 삼겹살이랑 소주를 마셔야 잘된다고 하네요.”
옆사람과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북적이고 좁디좁은 기사식당에서 소개팅 상대와 처음 만났다. 똑같은 장소에서 만나 같은 말을 들었더라도 그 사람만의 매력과 느낌,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다시 보고 싶은지를 결정하게 된다. 아쉬움 많은 만남으로 여기고 말 것인지,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인지는 받아들이는 나의 취향과 느낌에 달려 있다.
취미도 똑같다. 단 번에 느낌이 오기도 한다. 어깨너머로 배워 잠깐 따라 해 봤는데 재밌다거나, 집에 돌아오고 나서 며칠 동안 생각이 날 수 있다. 우선 호기심이 생기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면 시도해 보자. 반면 긴가민가한 때도 많다. 그럴 땐 잘해보라고 아무리 주위에서 등을 떠밀어도 영 내키지 않았던 때, 처음 느낌은 좋았지만 두세 번 만나 보니 아닌 걸 깨달았을 때를 떠올리고 적용해 보면 계속할지 말지 결정하기 한결 더 쉽다.
드디어 공식적인 연인이 되기 바로 전 단계까지 서로의 관문을 통과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면 상호 간 자발적인 결속이 형성된다. 때로는 잠을 줄여가면서 만나야 하고, 만남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 한다. 서로에게 구속되어도 좋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보통 두세 번 정도는 만나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 본다.
취미 역시 한 번의 이벤트성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으려면 신중함이 필요하다. 학원에 등록하거나 필요한 장비들을 갖추려면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는 만남에서 ‘바로 이 사람’이라는 섣부른 확신이 실망과 후회로 바뀌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취미 역시 덜컥 마련한 비싼 장비들을 눈물을 머금고 당근이나 중고나라에 처분하지 않으려면 ‘체험판’이 필요하다. 새로운 취미로 쐐기를 박기 전 원데이 클래스 같은 허들을 넘어보는 건 어떨까? 망설여질수록 두세 번 정도 가벼운 체험 클래스를 들어보며 앞으로 쭉 하게 될 것인지를 판단해 보면 좋다.
취미는 나의 자발적인 선택인만큼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좋아하는 순간에 그 사람도 함께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함께 갔던 카페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창 밖에 비가 왔다. 앞으로 비 오는 날 함께 커피를 마시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면 그 사람을 내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클래식 기타도 나에게 그렇게 스며들었다. 갈수록 생각나고, 배울수록 잘해보고 싶고, 결국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노래에 맞춰 반주를 하고 싶어서 집 앞 기타 학원에 찾아갔다. 클래식기타를 전공하신 원장님이 운영하시는 교습소였다. 어쩌다 보니 통기타 대신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처음 원했던 건 통기타인데 갑자기 핑거스타일에 입문한 것이다. 왼손으로 쉴 새 없이 지판을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네 손가락을 번갈아 줄을 뜯는 것이 어려워 그만두고 싶었다. 일단 수업료를 냈으니 출석은 하는데 썩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가 오고 쌀쌀하고 외로운 날에 클래식기타의 따뜻하고 둥근 음색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클래식기타는 공간을 감싸 안는 부드럽고 유려한 소리가 난다. 비 오고 흐린 날을 좋아하면서도 우울함을 달고 살았는데 앞으로 이런 날씨에 클래식 기타가 함께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추운 날 부드러운 라떼 한 잔 내려주며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따뜻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한편, 하면 할수록 그 취미가 나와 별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할 때도 있다.
지속할 마음이 수그러들수록 아쉽지만 나의 취미로 남을 가능성도 희미해진다. 나에겐 수영이 그랬다. 처음 초보반에서 수영을 배우는 내내 즐거움, 호기심보다는 부담감이 납덩이처럼 커져갔다. 키판을 잡고 발차기를 할수록 대포 소리 같은 굉음이 나며 거대한 물장구가 일었다. 매번 강사님이 황급히 나에게 헤엄쳐왔다. 수영 강습 전날이 되면 기대는커녕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복을 입기까지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소개팅으로 따지면 나도 상대방이 부담스럽고, 상대방도 내가 싫은 상황 같았다. 그는 억지로 잘해보고 싶어서 힘이 들어간 나의 태도에 부담을 느꼈는지 나를 밀어내며 뭔가를 더 해볼 의욕을 꺾이게 했다. 물에 뜨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혼자 허우적대며 물장구를 치다가 얻은 것은 극심한 근육통과 몰아치는 식욕뿐이었다. 매일 즐겁지 않은 고행을 계속하는 대신 여행 간 곳에 수영장이 있으면 놀면서 조금씩 배우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했다.
정확히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소개팅과 달리 취미는 몇 가지를 선택하든 문제 되지 않는다.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일상과 병행할 수만 있다면 온전히 나의 자유와 선택에 달렸다.
취미 하나 갖고 싶은데 나에게 잘 맞는 것을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재밌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아니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돌아서도 괜찮다.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탐색해 나가다 보면 나에게 맞는 취미를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소개팅에서 천생연분을 만날 확률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