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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Nov 03. 2021

'그래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에서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내가 말했다. 최근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지겹다고. 그냥 '그래서'로 살고 싶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 이어져야 하는 고난과 역경 극복의 이야기 대신 그냥 '그래서' 원인과 결과대로, 흘러가는 대로, 쉽게 살아지는 삶을 살고 싶다고. 사실은 그냥 별 노력 없이도 운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자신은 일을 하면서 점점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중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이 일이 상대의 삶이 좀 더 나아지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고.


얼마 전 나를 웃고 울린 책을 한 권 읽었다.


*그 책을 읽을 때쯤 '그래서'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책 속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주어지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웃으며 농담처럼 건네는 사람의 이야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차를 끓여 마시고, 자신을 돌보고, 주변을 돌보는 이야기. 울어도 괜찮을 상황에서 농담 건네기를 택하는 사람. 나를 웃고 울리고, 마지막에 잘 살아가고픈 마음을 갖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타인의 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며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다.


'그래서'는 편하지만 이미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는 없구나. 운이 좋아도 운이 좋지 않아도 정말 지루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나를 웃음 짓고 눈물짓게 하는 건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 이야기다. 진부한 그 접속사가 진부한 위로와 용기를 주니까. 그 위로와 용기가 운 없는 날의 나와, 또 누군가를 살아가게 할 테니까.


우리는 통화를 마치며 이야기했다.


'그래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적절히 잘 섞어가며 살아보자고. '그래서'를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난 친구와 대화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다시 내 삶에 집어넣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살아가던 친구는 '그래서'를 그의 삶에 좀 더 넣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또 그동안 살아온 '그래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겠지. 이야기를 나눈 후엔 다시 서로의 접속사를 바꿔 일상 사이에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른이 될수록 더 어려워지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속사로 설명하는 마음을 찰떡같이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래서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또 어떤 접속사로 삶을 설명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시작과 결말이 어떻게 되는 이야기든지, 어떤 접속사를 쓰든지, 오해 없이 들어줄 사람이 있기에 하루하루 써 나가 보기로 한다.



* 양다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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