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oresta Dec 15. 2021

13. 나와 같고 또 아주 다른 사람




아침엔 판다였다가 길을 걸으며 좋은 친구가 되었는데, 이 친구가 나를 너무 좋아했다. 다비데는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건넸다. 왜 이 길에 왔는지부터 시작해 어느 순간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내 친구들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까지 다 풀어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원래 내 얘기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의 끊이지 않는 리액션이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의 나쁜 놈이었던 그 앞에서 나는 어느새 내 인생사(?)를 풀어놓는 것도 모자라 중간중간 진짜 춤도 췄던 것 같다. 다비데는 내가 뭐라고 말만 하면 빵 터져 꺄르르 웃었다. 맞춰주려고 웃는다기엔 너무 진심으로 배를 잡고 웃었다. “You are crazy!” (넌 미쳤다=넌 진짜 대박이다) 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반짝이며 빛나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이렇게 재밌어해 주는 건 우리 언니 이후에 다비데가 처음이었다. (언니는 내게 똑같은 개그맨 성대모사를 열 번도 넘게 요청하고 매번 웃겨서 쓰러졌다. 그리고 나중엔 나같이 웃긴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게 들어주는 다비데가 나도 싫지 않았다. 수줍은 관종 스타일이라 개그 욕심이 많았지만 밖에선 그걸 감추곤 했는데 다비데 앞에선 자연스럽게 그 모습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아마 내가 다비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비데와 이야기를 하면 재밌고 편했지만 이성적인 호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의 눈빛을 통해 그의 호감은 나와 약간 결이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기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본능적으로 어느 선을 넘지 않도록 그와 거리를 두었다.


함께 걸으며 길에서 점심을 때우고, 늦은 오후가 돼서야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서자 다비데가 자연스럽게 이층 침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아래를 쓸래 위를 쓸래?" 당황스러웠지만, 차마 '나는 다른 침대에 묵고 싶어'라고 바로 말하지 못했다. 엉겁결에 "음... 위?"라고 대답하고는 잠시 후 다시 얘기했다."그런데 나 위에서 자다가 떨어진 적이 있어서 저쪽 벽에 있는 침대에 묵을게!"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눈치챘는지 그는 그저 알겠다고 했다. 짐을 풀고 나니 금세 저녁시간이었다. 공용 부엌에 이탈리아 사람 몇이 모여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그에게 말했다. "혹시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는 시끄러운 건 별로라며 나와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에둘러 마음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여 웃음이 났다.


다음 날 아침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걷게 됐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길을 나선 데다 그날따라 날씨도 흐려 마을에서 나가는 순례길 표식 (노란 화살표)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안에서 나가지 못하고 시간이 지연되니 슬슬 짜증이 올라오던 차에 그가 농담처럼 말했다. "네가 대장인데 왜 어제 나가는 길을 안 찾아놨어~!" (응?!) 별 계획도 준비도 없이 순례길에 온 나였지만, 그 와중에 다행히도 산티아고 코스와 알베르게 정보가 담긴 어플을 다운 받아 왔다. 그렇게 어플에 의지해 하루하루 일정을 정해 걷고 있던 차에, 대충 지도 위에 크게 적힌 도시 이름만 보고 걷고 있던, 나보다 더 계획이 없어 보이는 이를 만났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둘 사이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도 길치인지라 어둠 속에서 처음 보는 길을 찾는 게 어려운데. 그가 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상했다. 상한 마음은 금세 얼굴에 표가 났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면 재밌어서 시간이 금세 흘러갔지만, 우리는 성향이 비슷한 사람은 아니었다. 따져 보자면 반대에 가까웠다. 내가 멈추고 싶어 하는 지점에서 그는 좀 더 가고 싶어 했고, 나는 음식보다 빨리 먹고 쉬는 게 중요한 데 비해, 그는 종일 걷고도 30분 넘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식당을 고르고 골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도 길치인 데다 미리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내가 다른 이의 길잡이 역할까지 하게 된 것도 부담스러웠다. 여러 이유로 맘이 상해서 혼자 '이 친구랑은 오늘까지만 함께 걸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길을 걸었다.


부르고스 (Burgos) 이후의 순례길 코스는 대체적으로 800m 이상으로 고도가 높다. 8월 한여름이었지만 새벽이면 기온이 10도 초반으로 떨어질 정도로 일교차가 컸다. 나는 태양의 나라라 불리는 스페인의 여름이니 더울 거라고만 생각하고 긴팔 옷을 거의 챙겨 오지 않았다. 그나마도 베드 버그에 물린 후엔 맘 놓고 입을 수 있는 옷이 몇 벌 없었다. 반팔에 얇은 청 난방이 새벽에 숲 속에서 내가 걸친 전부였다. 몸이 으슬으슬하더니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더 기다려야 했다. 별 수 없이 배를 팔로 감싸 안고는 길을 걸었다. 내가 화가 난 걸 알고는 말없이 눈치만 살피며 걷던 다비데가 말을 건넸다. "추우면 내 자켓 입을래?" 성격상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군가 희생해서 나를 도와주는 건 싫었다. "아니, 네가 나 대신 추워하는 건 원치 않아" 라며 그의 호의를 극구 사양했다.


"걱정하지 마, 나 진짜 옷 많아." 몇 번을 거절하자 그가 이렇게 말하며 자기 배낭을 열어보였다. 배낭 속에는 두꺼운 후드티에 티셔츠에 바지도 여러 개, 양말도 일주일 내내 바꿔 신을 수 있을 만큼 많았다. 매일 배낭을 지고 종일 걸어야 하는 순례길 위에선 보통 경험이 많은 순례자일수록 짐이 가벼웠다. 초보 순례자들은 늘 짐을 줄이는 데 애를 먹었고, 길 위에서 하나씩 짐이 줄어들수록 욕심도 줄어든 듯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순례길 끝에 이르러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구나' 하고 깨닫는 것, 그것이 순례길의 정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비데의 가방 속에는 요일별로 갈아입을 수 있을 만큼의 옷이, 모든 날씨에 대응할 수 있게 들어있었다. 매일 어디 갈지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대신 어떤 순간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성은 철저한 사람이 있다는 걸 그를 보고 처음 알았다.


우리는 결이 비슷한 듯 아주 달랐다. 그래서 종종 다투기도 했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그의 배낭을 확인한 후에야 그가 건넨 외투를 받아 입었다. 훨씬 나았다. 그는 가방에서 후드티를 꺼내 입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를 도라에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나오는 만능 가방을 가지고 있으니까. 옷을 챙겨 입고 다시 장난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밝았다. 서운하던 맘이 따뜻한 온기에 모두 녹아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함께 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아침엔 판다, 오후엔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