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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r Jun 17. 2024

미국 병원 진료비

진료비 예상금액 묻는 법

하남시 동네 병원에서 엄마의 무릎 수술이 끝나고 퇴원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병원에서는 진료비 청구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연락을 해왔다. 병실 안에서 동생과 나는 그동안 수술비와 열흘 입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내기를 했다. 지는 놈이 냉면을 사기로 했다.


청구서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퇴원수속 창구에 가니 생각보다 두 배나 넘는 금액이다. 4 페이지가 넘는 목록을 집에 가져와서 구글에 다른 병원과 비교를 해보니, 역시 동네 병원이라 시내의 큰 병원보다 많게는 30%가 넘게 청구한 항목도 보인다. 특히 비수가 품목의 경우는 가격의 차이가 상당했다.


미국의 병원들

요즘 미국 주식을 거래하시는 분들이나 미국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미국의 의료 산업은 그 크기와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은 전체 총 GDP의 17%를 의료 산업에 쓰고 있다. OECD 평균이 8.8%라는 것에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숫자다. 이렇게 큰돈이 한 분야에 몰려있으니 당연 이 분야로 뛰어드는 회사나 일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아마존, 구글등 큰 회사들이 이쪽으로 계속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의료 산업이 가장 큰 고용주가 된 지 오래다.

2018년 미국 센서스 데이터. 의료가 가장 큰 고용주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의료.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얼마나 건강할까?


미국은 건강하신가요?

상식적으로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미국은.. 건강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나라들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등의 스칸디나비아 국가 들이고, 캐나다는 8위, 한국은 18위다. 미국은 26위로 점수로 따지면 겨우 74점, C 정도 되겠다.


물론 "건강한 나라들"이라는 정의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그나마 미국이 26위를 한 이 지표는 GDP, 인구, 건강 인지도등 여러 가지를 반영한 것이고 단순하게 수명만 본다면, 미국은 59위다. 생각보다 미국은 영아 사망률도 높다. 2021년 자료로 한국이 세상에서 5번째로 오래 산다.

한국의 평균 수명은 83.5세로 세계 5위. 미국은 59위 76.3세

비싼 미국의 병원

미국의 전체적인 의료산업의 문제는 책으로 쓰면 10권은 나올 분량이다. 미국에서는 의료 문제만 전문으로 보는 경제학자와 정책 분석가가 있을 정도다.


미국에 놀러 갔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가서 깁스만 하는데 몇 천만 원이 나왔다는 전설의 고향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들은 한국분들에게도 익숙하다. 나도 미국에 살면서 제대로 된 보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일들을 겪었고 주위 친구들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미국 안에서 여행 중 갑작스럽게 병원에 갈 일이 생기거나, 특히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기면 미국 병원들도 바가지를 적잖이 씌운다. 특히 동네에 병원이 하나밖에 없다면 최고 20% 이상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투명한 병원비 법

미국 병원에 가서 진료비가 얼마 정도 나오겠냐고 물으면 대답은 백발백중, It depends. 즉 모른다.라고 한다. 그러면 환자는 전혀 얼마가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료를 봐야 한다. 몇 십만 원이 나올 수도 있고 몇 천만 원이 청구될 수도 있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2021년 칼을 빼 들었다.


사실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이 법을 잘 모른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일부러 업계에서 쉬쉬해서 그렇다. 미국은 이제 법적으로 모든 병원이 예상이 가능한 병원비를 공개해야 한다. 물론 병원들은 심하게 반발했지만 정부는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환자가 물으면 병원비 예산서를 지급해야 할 뿐 아니라 웹사이트등에 병원비를 공시해야 한다. 이 법은 병원이 바가지를 씌우는 것을 막고 병원과의 경쟁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그럼 이제 미국 병원은 바가지가 없을까?


이 법의 한계점이 병원이 법을 위반할 경우 벌금이 하루에 겨우 $300이다. 그래서 어떤 병원들은 법을 무시하고 그냥 하루에 40여만 원씩 벌금을 내고 만다.


몇몇 병원들은 더 치사한 방법을 쓴다. 웹사이트에 가격을 공시해 놓고 사람들이 찾기 불가능하게 숨겨놓는 수법이다. 나 같은 개발자 놈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간다고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이 이런 정보를 찾게 하거나 소비자가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찾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여럿 있다. 그 말은 정보를 공시하고 숨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책이 있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작년에 여행을 갔다가 친구가 벌에 심하게 쏘여서 동네 응급실에 갈 일이 있었다. 병원비를 물으니, 알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이 조 항을 들먹이며 병원비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한참이 지나서 들은 이야기는 약 $300불이었다. 한 달 후에 병원 청구서가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300불에 이것저것 다른 조항이 포함돼서 $600불(한화 8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나마 이 정도에 다행이라고 친구는 가슴을 쓸었다.


나도 엄마 수술이 잘 되셔서 집에 온 것에 감사하며 청구서는 서랍에 잘 넣어 두었다.


대문사진 Photo by Marcelo Lea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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