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에게서 배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사랑을 한다. 어떤 사랑은 잘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랑은 실패로 끝난다. 어떤 경위에서건 끝난 사랑은 그 여운이 남는데, 어떤 이에게는 중심을 흔들 정도로 힘겹고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지독한 사랑의 아픔은 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Broken Heart Syndrom, 즉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정식 병명으로 등록이 되어있다.
누구나 느끼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특히 애인이나 연인을 잃은 슬픔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들지만, 어떤 이들은 이 상처와 슬픔을 평생 가지고 살아간다.
내 친구 중 40이 넘어서도 20대에 사귀던 x를 그리워하고, 술만 들어가면 은근히 그 이름을 부르는 녀석이 있다. 그때는 참 나쁜 놈이라서 헤어지라고 내가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말렸던 사람을 아직도 이 친구의 기억엔 잘생기고 음식을 많이 가려먹는, 그렇지만 옷을 잘 입고 남자다운 굵직한 목소리의 로맨틱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대학교 내내 친구 아르바이트하는데 와서 돈이나 뜯고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고 결국은 여러 동기들한테 사기 쳐서 모은 돈으로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로 도망간 놈이 뭐가 좋아서 아직도 그 타령인가 참 한심을 넘어서 신기할 정도다.
사랑 중에 특히 이런 사랑이 있다. 나한테 도움은커녕 실망과 슬픔만 주는 마이너스 사랑.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이 사랑에 집착하는 것일까?
얼마 전 읽은 Smitten(지독한 유혹)이라는 책은 Tom Bellamy라는 신경과학자가 쓴 책이다. 단지 사랑이라는 것을 정신과 의사, 또는 인류학의 입장에서 쓴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에 미치면 어떤 현상이 뇌에서 일어나는지, 그래서 뇌과학의 입장에서 이런 지독한 사랑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연구한 책이다.
우선 책에서 말하는 "미친 사랑", limerence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집착. 집착을 넘어선 중독.
- 거짓의 또는 부풀어진 의미 부여
- 비현실적인 이상화와 상상
그 사람과 헤어지고 집착을 넘어서 중독처럼 인스타를 뒤지거나, 그 사람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지 매일 밤마다 곱씹고 또 곱씹고, 그리고 앞으로 다시 그 사람과 다시 만나서 잘 될 가능성이 있는가를 매일 계산하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사람과 오붓하게 손을 잡고 있는 상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미친 사랑의 단계에 있다.
물론 이런 단계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또는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면 조금 나아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이러한 미친에 허비한다.
우선 우리가 인류학적으로 '외롭다'라고 느끼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내가 주위에서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외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진화에서 왔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사회적인 동물이 되어야 한다. 즉 주위에 의미를 줄만한 사람(위험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이런 불편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억지로라도 짝을 찾도록 본능적으로 만들어진 것.
Smitten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왜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헤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리워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뇌에서 찾는다.
우리가 특히 wanting and liking, 즉 원함과 좋아하는 것이 다른 뇌의 부분에서 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즉, 우리가 사랑을 멈추어도(stop liking), 계속해서 그 사랑을 원하게 된다는 것(want)은 뇌 속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성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원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뇌 구조 때문
그렇다면 뇌과학자는 이러한 불균형에서 오는 우리의 바보 같은 'wanting'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하라고 조언할까? 약간은 식상할 수 있겠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할까?” 이렇게 자신을 한심해하며 묻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작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이루는 연습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오늘은 한 번도 그 사람의 인스타를 보지 않겠어." 자신과 약속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고 지켰으면 뿌듯해하고 보상으로 떡볶이라도 먹어라. 이런 작은 계획을 계속 지키는 대견한 자신을 보면서 나 자신의 자신감도 생기고 이런 바보 같은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자연히 생기게 된다.
술, 담배, 도박 뭐든 습과적 또는 중독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있다. 적당한 양을 통제할 수 없으면 끊어라. 과감하게 그 사람을 인스타그램, 카톡에서도 차단하라. 자꾸 얼굴 보면 마음에 자꾸 새겨진다. 과감하게 끊어라. 용기를 내서 끊어라.
매번 잠들기 전에 얼굴이 떠올라서 예전에 함께 간 즐거웠던 휴양지를 꿈꾼다면 거기에 찬물을 껸질 때가 왔다.
가령, 연인과 차 안에서 오붓하게 드라이브하는 상상을 계속한다면 차 사고가 나는 상상을 뒤에 넣어라. 연인과 호텔에 가서 로맨틱한 밤을 보내려다가 갑자기 부모님이 호텔로 들여 닥치는 것으로 상상의 끝을 맺어라.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계속해서 부정적인 결말이나 상황을 로맨틱한 상상에 집어넣으면 우리의 뇌는 이제 이런 상상에 싫증을 낸다.
오죽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사랑이라고 하겠냐만은
어쩌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두뇌가 막을 수도 있겠다.
나는 예전에 마음이 복잡할 때 천체학책을 자주 봤다. 우주가 형성되고 수많은 은하가 있고, 수많은 행성들이 있는 것을 보며 내가 겪고 만나고 사는 이 땅이 얼마나 작고 짧은 시간인지 생각할수록 옛사랑의 의미가 작아졌다.
책은 한국에서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