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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 Apr 23. 2024

실수와 시소를 타는 것은 무엇?

일을 하는 도중에 실수를 했다. 그렇게 심각한 수준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일을 하는 도중에 나온 실수라 주변의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글 중 ‘반복되는 실수는 고의’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나의 실수는 고의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생각할까 봐 다시 걱정이 추가된다. 갑갑한 마음에 사무실을 나와 바람을 쐬보지만 무거운 마음은 영 가벼워지지 않는다. 다시 일을 해보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여전하다. 실수를 한 업무와 관련된 보완 메일이 왔다. 다시 꼼꼼하게 본 뒤 회신 메일을 보내는데 여지없이 들어가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쓰면서 스스로 지겹다는 생각을 하곤 메일을 보낸다.


‘실수를 왜 해서 스스로 일을 만드는 거야..’라는 원망이 메아리처럼 맴돈다. 하지만 원망을 하며 앉아 있기엔 일할 시간도 부족하므로 원망의 마음은 잠시 덮어두고 다시 일에 집중을 한다. 근데 나는 진짜 괜찮은 걸까?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멍 타임을 가지는데 오늘 한 실수가 다시 생각난다.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계속 일을 해도 괜찮을 걸까? 여러 의문이 들며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어떻게 할까.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고 고민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거지 뭐’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다시 내일을 맞이한다. 근데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인간은 경험과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경험과 실수는 언제나 함께 다니며 특히나 경험이 적은 경우 실수는 더욱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어떤 일을 완벽하게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일을 수행하는 도중에 발생하는 변수까지 통제하기 어렵다.(혹시 주변에서 누군가 ‘나는 그런 거 다 생각해서 하는데’라는 사람이 있다면 ‘베테랑’이거나 ‘허풍쟁이’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통해 스스로를 작게 만들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잦은 실수가 반복된다면 앞서한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어야 하나?  아니 생업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고 실수한 자신을 괴롭히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 지금도 실수를 많이 하고 있고 또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새로운 일을 겁내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이다. 실수를 해서 넘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만들어 실수를 찾고 보완하여 새로운 나로 만드는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다르다. 나는 자존심은 ‘체면’이라고 생각을 한다. ‘자존심’이라는 말 대신 ‘체면’이라는 말을 넣으면 쉽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아 자존심 상하네’라는 말은 ‘아 체면이 상하네’로 바꿔도 말하면 이해가 확실해진다. 하지만 자존감은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굳이 대체할 단어를 찾는다면 나 자신이다. 나를 인식하고 내 존재를 아는 단계가 자존감 형성의 최초단계이고 ‘우리가 그 단계에서 머무르냐? 일정 수준까지 그 단계를 높이느냐?’의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한다.


자존감을 잃는다는 건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내가 알던 나의 존재를 잃어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면 그 빈자리는 다른 것이 채우게 된다. 제일 빨리 들어오는 것이 자존심이다. 그리고 다음이 부러움, 그다음이 시기, 질투이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앞서 말한 세 가지 자존심(체면), 부러움, 시기, 질투가 생각난다면 본인을 사랑할 힘을 길러야 한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자존감의 자리를 메우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 포기하는 일이 쉽게 발생하고, 새로운 일을 겁나 도전하지 않고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존감이 원동력이 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일을 하는 목적이 내 자신의 단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하더라고 해내고 만다.  하지만 자존심(체면)을 세우고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고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는 것이 일의 목적이 된다면 시간과 정성을 들여하는 일의 포기는 정말 쉽다. 또 실수를 해서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고 새로운 일을 겁나 도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쉽지 않다. 애당초 목적이 내 자신이 아닌 타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잦은 실수로 정말 혼이 많이 났다. 잦은 실수는 나의 잘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업무 실수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이 너무 많았다. 개인의 취미에 빠져서 일을 등한시한다더라 나이도 어린놈이 사람만 만나는 거 좋아하더라 기타 등등 일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지적이었다. 회사구성원에 대한 지적보다 개인에 대한 지적이 주를 이루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존감은 낮아졌다. 그리고 그 자리는 부러움, 시기, 질투가 차지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보다 일 잘한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많이 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고 이후 그런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방황을 많이 했다. 나는 자기혐오와 방향을 마치고 싶었고 그 결과 자존감을 잃지 않고 키워 가는데 집중했다. 그 당시에 하던 일 중에서 나를 위한 일이 아니면 과감하게 포기했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은 목적을 나를 위한 단련으로 수정했다. 그 결과 나는 여전히 일에 대한 부분은 미흡할 수 있지만(모든 직장 내 상사를 단지 일로만 만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한국에서는 사회적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일로만 인정받는데 한계가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렇게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나름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존감을 잃지 않는 건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고 ‘어른’으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보다 나 스스로가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때문에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더라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실패를 끝이라 생각하지 않고 과정으로 여겨 결국은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은 우리의 자존감을 낮추기 위한 사람이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나도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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