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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Apr 28. 2021

좋은 아빠보다 괴물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

매달 떠나는 우리만의 여행

올해 초 아이들과 매달 어디로든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내가 있을 때 같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픔을 다 잊거나 지울 순 없겠지만 텅 빈 공간에 새로운 추억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으면 그렇게 새로운 즐거움으로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이나마 치유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캠핑이었다. 플로리스트였던 아내는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지만 자연 속에서 잠을 자는 건 원치 않았다. 벌레도 싫어했고 불편한 잠자리를 꺼려했다. 그래서 단 한번 시도해 볼 엄두도 못 냈다. 반면 나는 자랑스러운 보이스카웃 출신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직접 텐트 치고 버너랑 코펠로 밥을 지어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 공기 마시는 걸 사랑했다. 이슬 먹고 떨어진 말매미를 잡아 알코올 주사로 표본을 만드는 것이 어린 나의 기쁨이었다. 아내와는 참 많은 걸 공유했고 공감했으며 비슷하게 닮은 점이 많았지만 이렇게 정 반대의 성향들도 분명 있었다.


온유와 유하는 나와 아내만큼이나 성향이 다르다. 온유는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뛰놀며 탐구하는 걸 좋아한다. 얼굴부터 성격, 행동까지 죄다 아빠를 닮았는데 하물며 이런 성향까지 비슷하다. 온유가 제일 좋아하는 곤충은 콩벌레다. 길을 가다 지렁이를 보면 거리낌 없이 잡아 들어 돌고래 소리를 낸다.(좋아서) 반면 유하는 손에 뭐가 묻는 것도 싫고 벌레도 무섭다. 끈적이거나 익숙하지 않은 질감의 무언가를 만지는 건 불편하다. 집에 있는 걸 제일 좋아한다. 어딜 가도 맨날 집에 언제 가냐 묻는다.


모두의 여행 취향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니 셋 중 둘에 맞춰 그렇게 정한 캠핑이다.(아빠+온유 > 유하) 다만 처음부터 직접 텐트를 치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장비도 당장 다 갖출 수도 없으니. 그래서 카라반이나 글램핑으로 우선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덜 지치고 최대한 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부디 아이들이 즐거워해 줬으면.



1월의 선재도. 빠삐코를 불었다.


1월의 첫 여행은 정말 힘들었다. 아내를 떠나보낸 지 불과 한 달 남짓이었기에 당연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날씨가 많이 따뜻했고, 잔잔한 선재도 앞바다는 아름다웠다. 카라반도 매우 깨끗했다. 그랬기에 더 허전하고 그리웠다. 말로 표현도 잘 못하는 그 허전함을 아이들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재미있게 놀 거리들을 많이 준비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생각같진 않았다. 온유는 바다로, 갯벌로 나가 뛰 놀고 싶어 했지만 유하는 물에 발도 담그고 싶지 않아 했다. 온유는 불 피우고 그 곁에서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고 싶어 했지만 유하는 집에 가자고 자꾸만 졸라댔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그냥 전부 관두고 싶었다. 방에 들어와 티브이를 틀어주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꼭 아내가 아니어도 좋으니 누구라도 대화할 사람이 절실했다. 외로웠다.


사실 외롭다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다. 너무 북적이는 건 싫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이 우리끼리 가는 건 또 너무 힘들다. 그렇게 지금은 까다로운 상태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좁은 카라반에 의외로 침대가 3개나 있었는데 아이들이 침대 밑으로 떨어질까 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내 몸으로 가드를 치고 두 아이를 재웠다. 그러니 잠을 잘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다신 이렇게 여행 못 가겠다 생각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2월의 포천. 추웠지만 좋은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다신 못 갈 것 같은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몇몇이 동행을 해주어 2월의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실 코로나로 5인 이상 모일 수가 없으니 같이 여행을 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 옆 텐트엔 의지할 수 있는 형과 그의 아들이, 근처 또 다른 숙소에 존경하는 선생님과 같이 와준 그 분의 딸이. 그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로가 됐다. 밤 사이 피워 둔 모닥불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작년 이후 처음으로 맥주에 입도 대봤다. 아이들은 노릇하게 구운 마시멜로우에 푹 빠졌다.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걸 물으면 가장 먼저 마시멜로우를 얘기했다. 그런 기억이라도 남아 참 다행이었다.




3월의 안면도. 수영장 딸린 펜션은 비쌌다.



금세 또 3월이다. 매달 콘셉트와 지역과 숙소를 정하는 것도 참 일이다. 다만 이번엔 온유가 명확한 디렉션을 줬다.


"아빠, 나는 바다 앞에 수영장도 있는 숙소면 좋겠어."


하아, 그래 온유야. 3월엔 유독 바빴고 여행을 불과 2주 앞둔 시점까지 예약을 못했다. 안면도 앞 펜션을 겨우 구했다. 다만 바닷가는 매우 추웠고 그마저도 숙소에선 차로 5분 거리여서 바다를 즐길 겨를은 없었다. 또 여행의 둘째 날은 온유의 여섯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작년 생일을 제주에서 너무나 즐겁게 보냈기에 혹여나 그 빈자리가 느껴질까 걱정이 많았다. 2박 3일 일정이었는데 첫날밤늦게, 아내와 같이 일하던 나도 아이들도 편한 동생이 와줘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 내가 미쳐 준비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챙겨 왔고 늦은 밤에 와서 다음 날 늦은 밤에 올라갔다. 확실히 나도 아이들도 더 많이 웃고 즐거웠다. 다만 하루 먼저 올라간 그 빈자리가 또 대단히 허전하고 힘들었다. 집에 가는 길엔 또다시 비가 내렸다.




4월의 태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이번 4월의 여행.


비록 캠핑은 아니어도 확실한 자연의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찾았고, 지난달 못다 한 갯벌체험이어도 참 좋겠단 생각을 했다. 친한 동생에게 추천받은 확실한 숙소가 있어 예약을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았다. 숙소 컨디션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프라이빗 한 바다와 미리 봐 둔 물 때 시간에 맞춰 열린 갯벌, 그리고 파도 파도 나오는 조개들. 아름다웠던 소나무 숲까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었다.


셋만 갔음에도 한결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조금은 무뎌진 것도 있었을 테고 좋은 환경에 누그러든 것도 있었을 테다. 다만 준비할 것은 두 배 이상 많았다. 반팔도 아닌 긴팔에 갯벌을 체험하려니 추위와 더위 모두에 대비한 많은 옷가지들이 필요했고, 장화에 조개를 캘 도구, 물놀이 도구, 모래놀이 도구, 돗자리, 간식 등 끝이 없었다. 그래도 이골이 났는지, 어찌어찌 되더라. 데리고 놀고 씻기고 빨래하고 밥하고 먹이고 정리하고 재우고. 그저 다 내 몫이라 생각하면 또 그렇게 흘러가더라.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나도 싶었다.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13년 간 직장인으로 내 삶의 시간을 채워갔던 내가, 엄마이자 아빠이자 전업주부이자 경제적인 것 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이 모든 걸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여행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장 좋았던 걸 물었더니 갯벌에서 신나게 조개 캐던 일을 얘기한다. 마시멜로우 먹은 것보다 더 좋았다 했다. 그걸로 됐다 싶었다.




우리의 일상을 SNS를 통해 공유했을 때 주변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좋은 아빠세요.' '대단하세요.' '훌륭한 아빠예요.'


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해주는 고마운 말임을. 하지만 나는 또한 안다. 아니 나만 안다. 나는 사실 좋은 아빠가 아니다. 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내 노력은 사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내 몸뚱이, 내 마음 하나 편하려 아이들에게 화내고 소리 질러 쉽게 아이들이 내 말을 듣게 하는, 그런 괴물 아빠가 되고 싶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화풀이의 대상이 절대 될 수 없는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네가 남긴 우리의 선물들에게, 화내고 혼자 자책하고 무너지는 그런 이기적인 괴물 아빠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내 맘 하나 편하자고 혼자 아둥바둥 힘겹게 가는 여행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이어가는게 우리 모두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를 가져올 것도 같았다. 더 가까워지고 더 사랑하고 보듬고 아끼면서.


그렇게 어느 순간엔, 너의 빈 자리를 느끼지 못 할 만큼의 더 단단한 가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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