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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Jan 06. 2021

05.<프리즌 브레이크> 전설의 시작

창조적 한계의 원칙 - 감옥이란 장소의 매력

0. 창조적 한계의 원칙 

한계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잘 짜인 이야기를 향한 첫 걸음은 좁고 잘 알아볼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 이야기의 설계에 부과되어 있는 이 구속은 창의성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것이다. 모든 뛰어난 이야기들은 좁고 잘 알아볼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일어난다.
- 로버트 맥키 <STORY> 


1. <프리즌 브레이크> 미드 전설의 시작 

그러니까, 내가 <STORY>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한계가 바로 창의력'이란 것이다. 로버트 맥키는 3장 [구조와 설정]을 시작할 때 상투성를 피할 수 있는 요소로 '설정'을 언급한다. 그러나 설정의 요소 또한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설정에는 네 가지의 차원이 있다. 시대 배경, 기간, 장소, 갈등의 정도. 


별도로 추가적인 설명이 붙어 있지도 않다. (짧게 붙어있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설정이라고 하면 인물과 관계가 떠오르는 것과 거리가 있다. 그러다 이 4가지 설정 축을 보기 좋은 드라마 중 하나로 떠오른 게 바로 <프리즌 브레이크>다. 

국내에 미드 열풍을 일으킨 <프리즌 브레이크>


<프리즌 브레이크>는 미국 폭스TV의 인기 드라마인 <24>의 다음 시즌 제작이 늦어지면서 땜빵용으로 만들어진 단편이었다가, 첫 방송에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그 신분이 달라졌다. 4부작에서 13부작으로, 그리고 다시 22부작으로, 그리고 시즌4까지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커진 <프리즌 브레이크>는 한국에 2007년에 상륙했다. 2007년은 어떤 해였나. 당시만 해도 미드를 보려면 지상파 혹은 케이블 방송국의 수입 방영에 의존하거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석호필 열풍'(주인공인 '마이클 스콜필드'의 한국식 애칭)이 TV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아주 흔한 미드 몰아보기의 시초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프리즌 브레이크>의 저력이 충분히 설명될까? 


시즌2 이후부터는 호불호가 갈리고 갈수록 재미가 떨어진다는 평이 있지만, 시즌1의 몰입력과 재미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나 역시 2008년 <프리즌 브레이크>를 처음 봤는데 굉장히 인상깊게 봤고, 13년 이후인 지금에 다시 봐도 처음 보는 것처럼 강렬한 재미를 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시대 배경, 기간, 장소, 갈등의 정도'로 프리즌 브레이크가 왜 매력있는지 살펴보자.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의 설정 요소



2. 교도소라는 장소 : <오렌지이즈더뉴블랙>, <슬기로운감빵생활>, <7번방의 선물> 선택의 이유 


<프리즌 브레이크>의 시대배경은 미국 방영 당시인 2005년 현대를 바탕으로 하는 듯 보인다. 아직 사형제도가 살아있는 일리노이주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할 위기에 놓인 형 링컨을 구하기 위해, 천재적인 구조기술자인 마이클 스코필드(이하 석호필)이 스스로 교도소에 들어가며 이야기는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대배경은 이야기의 흐름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당시 미국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한 갈등으로 거대한 적대 세력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피해자로써 링컨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배경인 교도소다. <프리즌 브레이크> 이전에도 수많은 교도소 배경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있었다. '교도소가 배경인 영화'가 장르로 있을 정도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쇼생크탈출>도 있다. 언뜻 보면 교도소는 좋은 배경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감옥이라는 제한된 장소, 제한된 물품, 제한된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교도소를 선택하는 건 바로 '제한이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교도소는 전혀 다른 계급과 인종, 세대를 한 곳에 억지로 몰아넣는, 그야말로 다양성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게다가 범죄라는 사건사고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마다 나름의 사연과 배경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단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명의 이야기를 결합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기 좋다는 뜻이다. 실제로 <프리즌 브레이크> 이후에 나온 드라마인 <오렌지이즈더뉴블랙>은 물론, 한국 드라마인 <슬기로운 감빵생활> 역시 재소자들의 이야기들을 엮고 엮어서 하나의 시리즈물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은 어떻게 보면 그 사연들을 관찰하는 관찰자적 시점에 놓여있다. <쇼생크탈출>을 비롯해서 수많은 교도소 배경 작품들의 주인공이 '사실은 교도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놓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또한 교도소라는 특수성 자체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현대 사회에서 (겉으로는) 계급제는 사라졌지만, 교도소는 다르다. 그 안에서는 힘에 의해서 계급이 파생되고, 돈과 정치로 인해 그 계급과 대우가 확연히 달라지는 '동물적인 공간'이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막장'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극적인 사건과 갈등을 만들기 쉽기 때문인데, 교도소는 굳이 막장인 척 하지 않아도 이미 막장인 공간이기 때문에 쉽게 사건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의 초반부에는 백인 재소자와 흑인 재소자들 간의 피의 전쟁이 놓여있고, 남성 재소자들간의 강간과 폭력이 주요한 사건들로 다뤄진다. 


3. 기간 : 형 '링컨'의 사형 집행 전까지. D-DAY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예상 외로 몰입을 주고 스토리의 변화를 주는 요소는 '기간'이다. 바로 형 '링컨'의 사형집행일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극의 가장 큰 위기는 링컨의 사행집행일 당일이다. 드라마는 '어떻게 그를 죽기 전에 빼낼 것인가?'를 궁리하는데 가장 큰 몰입과 집중을 준다. 시간적 제약은 석호필이 급하게 터널을 뚫고, 급하게 새라와 교도소장을 탈출 계획에 끌어들이는 동기가 된다. 


이를 통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얼마나 극의 몰입과 재미에 도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시즌2는 교도소 밖을 나서면서 시작되는데, 공간의 제약이 없고 시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인지 극에 집중점을 찾지 못해 재미가 확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 갈등의 정도 : 석호필이라는 윤리적 히어로 


<STORY>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 요소로 '갈등의 정도'를 들 수 있다.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깊은가-의 정도로 나눌 수 있을텐데, '갈등의 정도'를 <프리즌 브레이크>로 풀어본다면 <프리즌 브레이크>는 세 가지 차원의 갈등이 있다. 


-개인vs사회 : 여기서 '사회'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적이다. 그들은 미국의 장악이라는 거대한 욕망 아래 움직이는 국가 조직체의 일원으로, 그 거대한 힘으로 인해 '링컨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 베로니카 도노반의 노력은 늘 물거품이 된다. 증거와 배후세력을 좇는 베로니카와 이를 무력화하려는 거대한 사회의 움직임이 교도소 밖의 주요한 갈등 라인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감방 탈출이 아닌, 거대한 시스템과의 싸움으로 갈등이 확장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개인vs개인 : 대부분 감방이라는 밀집된 사회에서 발생한다. 재소자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강렬한 욕구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서로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특히 석호필은 감방 탈출에 필요한 물품과 인원을 구하기 위해 이런 저런 수를 강구하는데, 항상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석호필이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개인vs내면 : 석호필이 윤리적 인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다. 석호필은 형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들어왔지만, 만약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쳐야 한다면 윤리적인 갈등을 일으킨다. '형을 구하려면 그가 죽어야 해. 하지만 그래도 될까?'를 묻는 것이다.  


여기서 설정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석호필이 타인의 아픔에 쉽게 감정이입하고 꼭 도우려고 한다는 설정 요소를 넣는다. 때문에 새라가 다른 재소자들에게 위협을 당할 때, 계획이 들통날 수 있는 위기에도 새라를 구하러 가기도 하며, 누군가를 죽여야 형을 살릴 수 있다면 계획을 바꾸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5. 설정이 필요한 이유 


이야기는 반드시 개연성의 내적 법칙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사건 선택은 자신이 창조해 낸 세계가 부여하는 개연성과 가능성에 제한받는다. 


이야기의 설정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예민하게 규정하고 제한한다. 어떤 이야기의 설정이 허구라고 해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아무것이나 다 그 안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어떤 세계에서든, 그 상상의 세계가 아무리 황당한 곳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종류의 사건들만이 가능성과 개연성을 가진다. ... 모든 허구의 세계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우주를 형성하면서,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의 원인과 방법에 대해 자신들만의 규칙을 부여한다. ... 정직한 이야기는 단 하나의 시간과 공간만을 근거지로 한다. _ <STORY>


그러니까 설정이라는 것은 이야기의 구체성을 더해주는 한편, 이야기가 상투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보루이다. 설정이 제한적일수록 세계는 명확해지고, 작가가 해야 할 연구조사도 확실해진다. 여기서 분별력 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재미가 나온다는 말씀이다. 특히 <프리즌 브레이크>시즌2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질 때 재미가 확 떨어지는 걸 본다면, 제약이야말로 창의력이라는 로버트 맥키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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