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기대와 정반대로 향하는 이야기
0. <인비저블맨>은 2020년에 개봉한 SF스릴러로, 스릴러 장르에 기대하는 감각과 감정을 고루 만족시킨다. 투명인간이란 소재를 사용하여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를 현명하게 사용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자체도 공포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할 때는 심장이 뚝- 떨어진다. 게다가 보이지 않으니 눈알을 사방으로 아무리 굴려봐도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강렬한 몰입은, '의심'에서 나온다.
의심으로 강화되는 공포
1. 영화는 대저택에서 다급하게 도망치는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를 좇으며 시작한다. 따라오는 남편을 피해 가까스로 도망친 세실리아는 경찰이자 친구인 제임스의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지만, 남편이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란 공포에 사로잡혀 집 앞 마당조차 나가지 못한다. 결혼생활 동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했던 남편이 언제든 들어닥칠 것이란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세실리아는 거액의 유산까지 상속받으며 새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요리를 올려둔 가스불이 거세져 불이 나는가 하면, 취업 면접에 대비해 꼭 챙겼다고 생각한 포트폴리오는 가방에서 사라져있다. 그리고 자신이 분명 남편의 집에 떨어트린 신경안정제가 아무렇지 않게 지금 살고 있는 제임스의 집에 놓여있다. 세실리아는 남편이 죽지 않았고, 투명인간이 되어 자신 곁에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점점 광기와 불안으로 짙어지는 다크서클과 흔들리는 동공을 볼 때, 관객조차도 그녀를 의심하게 된다. 정말 투명인간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해? 세실리아의 망상 아니야?
이야기에 관객이 집중하는 것은, 등장 인물이 주변 세계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면서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그 행동이 그의 기대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힘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한순간 뿐이다. 등장 인물을 둘러싼 세계는 그의 기대와 완전히 다르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반응한다.
-로버트 맥키<STORY>
가스라이팅, 보이지 않는 억압
2.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시사상식사전])로 영화 <인비저블맨>에서 이러한 '의심'을 성공적으로 '이미지화'한다. 투명인간은 세실리아 앞에서만 나타나며, 세실리아가 하지 않은 행동도 세실리아가 한 것처럼 꾸민다.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세실리아만 미친 사람처럼 그려지는데, 이 때문에 친구인 제임스와 친언니로부터도 멀어져 고립된다. 세실리아는 '그가 날 괴롭히려고 하는 짓이야, 내가 그런 것처럼 꾸며서 나를 고립시키려는 거야'라고 외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조차 세실리아를 의심하게 된다. 분명 투명인간의 발자국과 입김이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만, 이 장면을 증언하는 건 세실리아의 눈이므로, 세실리아의 망상이 꾸며낸 장면이라면 투명인간도 거짓이다. 투명인간이 확인되는 건, 갈등의 최고조 순간이다. 수감소에 갇혀 있는 세실리아가 투명인간과 대치를 하다가 경찰이 등장하는데, 이 때 투명인간이 경찰을 공격하고 무수히 많은 경찰들이 투명인간을 목격함으로써 그의 존재는 입증된다. 그제서야 세실리아는 감옥 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의심, 그리고 관객들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난다.
3.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확인하기 어려운 억압과 통제 속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지인들로부터 떨어트리고 고립시키는 사전 작업)을 만들고, 피해자는 점점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에 빠져든다. 영화 <인비저블맨>에서도 세실리아는 충분히 자신의 행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건, 세실리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엄청난 의지력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의지력만으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수감소에서조차 벗어난다. (앞서 <퀸즈 갬빗> 편에서 많은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바로 '의지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비저블맨>은 SF 스릴러의 장르를 차용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수트를 개발한 광학 과학자라는 설정으로 '투명인간'을 설정하지만, 과연 보이지 않는 것은 투명수트일까, 가스라이팅일까. 의심마저 스릴러가 되는 영화 <인비저블맨>,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스릴러가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이야기 공부 지수(이야기를 공부할 때 볼 법한 작품인가? 5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