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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Dec 30. 2020

03. <퀸스 갬빗>
'안야 테일러 조이' 예찬  

승부욕은 주인공의 미덕이다


0.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은 매혹적이다. 겉으로는 체스에 대한 드라마다. 고아가 된 여자 아이가 체스 챔피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고,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체스 왕국을 차례대로 무너트리며 전복적인 쾌감을 준다. 볼거리도 많다. 주인공을 따라 1950~60년대 미국, 프랑스, 멕시코, 러시아의 체스 대회를 돌며 복고풍의 의복과 호텔,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고아가 된 베스 하먼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퀸스 갬빗>


1. <퀸스 갬빗> 서사의 한 측면이 체스 챔피언으로의 성장기라면, 또 한 측면은 로맨스의 여자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의의 차 사고로 고아가 된 베스 하먼은 보육원에서 우연히 두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는데, 이후 <퀸스 갬빗>은 하먼이 남녀의 키스를 훔쳐보는 씬을 한 번 더 반복한다. 또한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나간 지역 체스 대회에서 첫 생리를 겪고 당황하는 장면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체스 실력 만큼이나 베스 하먼은 여자로서도 성숙한다. 체스 대회에 참가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내가 전에 만난 꼬마 아가씨는 어디갔지?"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낸다. 성숙한 하먼은 성적 긴장감을 만들고 유혹하는 여자의 이미지를 종종 취한다.  



그녀는 보육원 지하실에서 체스를 배운다. 가장 깊은 어둠의 순간에 다시 찾는 곳이기도 하다. 


2. 이처럼 <퀸스 갬빗>은 로맨스 장르적인 재미도 놓지 않으며 베스 하먼의 여자로서의 성장기를 '훔쳐본다'. 그러니까 <퀸스 갬빗>의 재미의 일정 부분은 천재적이며 유혹적이기까지 한 베스 하먼을 탐미할 때 주어진다. 


 그런 점에서 <퀸스 갬빗>의 '안야 테일러 조이'를 그냥 주인공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그녀는 <퀸스 갬빗>의 얼굴이며 매력이며 상징이다. 1996년 미국 출신인 안야 테일러 조이는 스코틀랜드, 아르헨티나계인 아버지와 잉글랜드, 스페인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국적 출신인 그녀는 매우 이국적인 외모와 함께 모델로 활동했을 만큼 길쭉한 신체를 자랑한다. 이런 그녀의 외양은 <퀸스 갬빗>이 취하는 서사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충족시킨다.  


 그녀의 커다란 눈과 끝이 살짝 올라간 얇은 윗입술은 체스 게임에 집중했을 때의 예민한 감각을 전달하며, 170cm가 넘는 기다란 신체는 1960년대의 컬러풀한 복고풍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로맨스의 여자 주인공으로서 매력을 발산한다. 


3. 그러나 마냥 아름답고 매력적이기만 한 것으로 주인공의 위치를 점할 수는 없다. <퀸스 갬빗>을 지배하고 있는 감각은 신경증적인 예민함과 불안이다. 


 베스 하먼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자살을 시도할 만큼 불안에 시달렸으며, 어떤 근원적인 힘으로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반복된다. 하먼이 보육원에서 처음 접하게 된 초록색 안정제는 이후 그녀를 중독시키고 때로는 타락시키는 유혹으로 기능한다. 불안과 중독이라는 장애물을 이겨내고 체스 챔피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퀸스 갬빗>의 주인공 베스 하먼은 한 가지 미덕을 갖고 있는데, 그건 바로 미친듯한 '승부욕'이다. 


모든 주인공들은 어떤 뚜렷한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중 첫번째로 두드러지는 것은 의지력이다. 주인공은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욕망을 끝까지, 이야기의 장르와 설정에서 정해지는 인간 한계의 끝까지 추구해 나갈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로버트 맥키 <STORY>


4. 베스 하먼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강한 승부욕을 드러낸다. 샤이벌씨가 체스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먼은 포기하지 않는다. 몰래 샤이벌씨의 체스를 훔쳐보며 체스의 규칙을 알아내고 마침내 샤이벌씨와 체스를 두게 된다. 갑자기 안정제를 얻지 못하게 될 땐 어떠한가. 몰래 약방의 문고리를 따고 안정제를 한 움큼 집어먹는 대범함을 보인다. 


이런 그녀의 자질(?)은 체스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질 것 같은 위기에 순간에는 스스로를 힐난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아무리 우승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수를 읽지 못하고 약점을 보이면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어떤 경기든 'I will win'이라고 말하는 빛나는 자신감 아래에는 이처럼 집요한 승부욕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베스 하먼은 주인공이 되기에 또한 충분하다. 계속해서 넓어지는 그녀의 체스 세계는 바로 이런 승부욕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 


퀸스 갬빗의 인물들. 따뜻한 조력자들과 그녀의 남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 공부 지수(이야기를 공부할 때 볼 법한 작품인가? 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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