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림 Dec 28. 2020

02. <결혼 이야기>
결국 모두의 이야기

이야기란 삶의 진실을 위해 구체적인 삶의 감각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는 뉴욕에서 촉망받는 연극 감독인 찰리(아담 드리이버 분)와 그의 연극에서 가장 뛰어난 배우인 니콜(스칼렛 조핸슨 분)의 부부 이야기다. 누가봐도 잘 어울리고 매력적인 그들. 영화는 이 부부가 서로의 매력을 읊는 것으로 시작한다. 


<결혼 이야기>는 도입부에 치트키를 썼다. 부부가 서로의 매력과 장점을 읊는 편지로 시작함으로써 그들의 긴 서사를 굳이 훑을 필요 없이 인물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서로의 매력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결혼 이야기>는 그 목소리가 편지글이었음을 보여주면서 둘이 이혼조정관 앞에 앉아있는 장면으로 전환한다. 애정 없이 쓸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편지는 그러나 읽혀지지 않는다. 니콜은 찰리에 대한 사랑이 뭍어나는 이 편지를 절대 읽을 수 없다. 찰리와 이혼을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니콜은 찰리가 싫어져서 이혼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사랑이 식었다면 간단하죠"라고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를 만난 니콜은 고백한다. 고객을 노련하게 꾀어내는 노라 옆에서 니콜은 어떻게 찰리를 만났고, 얼마나 깊게 사랑했으며, 왜 헤어지려고 하는지 말한다. 이 때 니콜 역할을 맡은 스칼렛 조핸슨의 독백은 그 순간 순간의 감정에 따라 요동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게 만든다.  


"... (LA에서의 삶은) 내 일부가 죽은 기분이었어요. ... (그런데 뉴욕에서 우연히 찰리를 만났고) 내 일부는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던 거였어요. 대화가 섹스보다 좋았죠. 근데 섹스도 대화 같았어요. ... 우린 함께 밤을 보냈고 그 다음 밤도 ... 내가 떠나지 않았어요. 난 계속 찰리한테 맞춰 살았어요. 난 처음에 스타 배우였고 특별한 사람이라 관객들이 보러 온다고 생각했는데... 난 잊혀졌고... "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아이러니


니콜은 뉴욕에서 찰리에게 맞춰 살아가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미 천재적인 연극 감독이 된 찰리는 니콜의 좁아지는 세계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무심함을 확인한 순간 니콜은 이혼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 없이 원만하게 헤어지려는 둘의 생각과 다르게, '완전한 승리로 LA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노라의 제안과 함께 둘의 이혼 과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혼 이야기>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초반에 나레이션으로 설명했던 각자의 성격과 매력이 원인이 되어 이혼 과정을 파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니콜의 성격은 노라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원인이 되며, 승부욕이 강한 니콜과 찰리의 성격은 끝장을 볼 때까지 이혼 소송을 포기 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또한 영화 초반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던 니콜의 편지는 영화의 끝에서 이별의 슬픔을 의미하며 그 가치가 긍적적 가치에서 부정적 가치로 변해있다. <결혼 이야기>는 이러한 가치의 변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며 핍진성을 획득한다. 


구조란 등장 인물의 삶의 이야기로부터 선택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이때 삶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어떤 특정한 관점을 나타내고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다. 

-로버트 맥키 <STORY> 


<결혼 이야기>는 읽혀지지 않는 편지에서 읽히는 편지로, 사랑을 느낄 수 있던 편지에서 이별의 슬픔이 느껴지는 편지로 변화하는 구조 안에서 이야기를 선택한다.  



#이혼 이야기인 <결혼 이야기>, 그러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나는 이혼은 커녕 결혼도 경험하지 않았지만  <결혼 이야기>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혼을 통해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결혼 이야기>는 상실로서 존재의 의미를 역설하는 현명한 방법을 쓰기도 했지만, 그냥 세상에 무수한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주제까지 나아간 아름다운 작품이고,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등 총 6개의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매일매일의 생활, 내면 생활과 밖으로 드러나는 생활, 그리고 꿈과 행동을, 언어보다는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된 시로 써내는 예술가라는 점에서 삶을 다루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두 시간에 걸친 사건들의 은유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란 삶의 진실을 발견해 내기 위해 삶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되 구체적인 삶의 감각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이야기란 반드시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깊이나 의미가 없는 보통 삶의 단순한 복사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로버트 맥키 <스토리>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이야기 공부 지수(이야기를 공부할 때 볼 법한 작품인가? 5점 만점)



작가의 이전글 01. <백일의 낭군님> 도경수의 캐릭터 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