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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Dec 28. 2020

01. <백일의 낭군님>
도경수의 캐릭터 쇼

"코믹한 인물은 맹목적인 강박증이 특징이다”

#역주행까지는 아니지만


2020년 12월 넷플릭스에는 2년 전 드라마가 '오늘 한국의 TOP 10'에 들어왔다. 바로 tvN<백일의 낭군님>이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스타트업>에서 빵- 뜬 김선호가 서브남주로 나온 작품이라 그런가. 역시 jtbc드라마 <부부의 세계>로 뜬 한소희가 상대적으로 무명일 때 서브여주로 출연한 작품이다. 메인인 남주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도경수, 여주에는 로코계의 샛별 남지현이 출연했다.


다시 이 캐스팅 할 수 있을까.. 절대 못할 듯..

지금이야 매우 흥미로운 캐스팅이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2018년 방영 당시 시청률 5%로 출발했고, 제작진도 그 정도의 시청률을 예상하며 제작한 비지상파 월화드라마였다. 


하지만 시청률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백일의 낭군님>은 14%로 종영했다. 지금도 이 시청률 기록을 앞선 tvN 드라마는 <사랑의 불시착>, <도깨비>, <응답하라 1988>, <미스터 선샤인> 뿐이다.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알 수 있다. 



#새롭지는 않지만 


<백일의 낭군님>의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도 고전적이다. 무사놀이를 즐겨하는 능선군의 아들 이율은 여느 날처럼 꼬마들에게 검을 휘두르며 놀다가 한 여자애에게 두드려 맞는다. 애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전에 없던 정의로운(?) 여자애의 등장에 한 눈에 반한 이율은 여자애의 집에 달려가지만, 능선군과 함께 반정을 꾀하던 김차언(조성하 분)의 손에 그녀의 아비가 죽고 집안이 박살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트라우마)     


이후 이율은 이 트라우마(마음의 상처) 때문에 삐뚤어져 싸가지 없는 왕세자로 자라난다. 그러다 기우제 행차 중 살수의 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기억을 잃고 송주현이라는 한 마을에서 깨어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홍심이란 여자애와 결혼을 해야 한다. 

<백일의 낭군님>의 약간은 식상한 시작. 왜 많은 드라마들이 어린 시절 인연부터 시작하는 걸까. 


#도경수의 캐릭터 쇼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는 예상이 된다. 아마 원득과 홍심은 결혼을 할테고, 마음이 없이 결혼했으니 위기가 찾아올테고, 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질 것이고, 이후 이율은 기억을 찾을테고, <백일의 낭군님>이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여자(홍심이자 윤이서)를 떠나야 할테고... 실제로도 드라마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재밌다. <백일의 낭군님>은 뻔한 이야기 속에서도 로맨스 코미디로서 제 빛을 발한다. 여기에는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호연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백일의 낭군님>에 출연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저만의 서사와 성격을 갖고 이야기를 움직인다. 도구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연에 불과한 박복은 아전도 "갱장하네~"라는 유행어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작가가 등장인물 모두를 사랑하고 있고, 이야기를 촘촘하게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실제로 <백일의 낭군님>의 노지설 작가는 이 작품을 2년 넘게 준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낭군 캐릭터의 매력이다. 기억상실이란 소재로 도경수는 왕세자인 이율과 평민인 원득 역을 연기하는데, 그 간극이 로맨스코미디에서 '코미디' 부분을 완벽하게 커버한다. 왕세자일 때 "지금 나만 불편한가?"를 숨쉬듯 내뱉으며 싸가지를 발산하던 그가 기억을 잃고 평민이 되어서도 싸가지를 유지할 때, 왕세자일 때 당연하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그 간극에서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바보가 되지 않으려는 표정이 과히 압권이다. 왕세자의 취향과 말투를 그대로 행하는 원득은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그 자체로 코미디를 만든다. 여기서 로버트 맥키의 통찰력 있는 문장이 바로 맞아떨어진다. 


"코믹한 인물은 맹목적인 강박증이 특징이다."     
-로버트 맥키 <STORY>-


강박증이란 손씻기, 창문닫기 같은 일종의 강박적인 행동 질환을 일컫는데, 로버트 맥키가 말하는 강박증이 이런 병적인 수준을 말하는 건 아니다. 


모든 장인들이 그렇듯 대가들도 자기 예술을 완성해가면서 온통 자기 일 이야기에만 골몰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코믹한 인물은 자기 눈에 안 보이는 강박증 같은 기질을 부여함으로써 창조된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 어떤 류의 강박증이라도 상관없다. 가령 신발이면 어떤가.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는 신발에 대한 자신의 신경증적인 욕구를 깨닫지 못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녀의 신발은 무려 삼천 켤레에 이른다고 한다. - 로버트 맥키 <STORY> 


로버트 맥키는 그러므로 '그가 집착하는 대상'만 찾아주면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원득은 왕세자일 때 하던 걸음걸이와 말투, 왕세자일 때 누리던 의복과 집기에 집착한다. 구체적으로는 육전과 비단이다. 실제로 육전이나 국밥을 얻어먹기 위해 한사코 거부하는 육체노동에 나서기도 하며 수모를 겪는다. 평민인 그가 하는 고고한 말투와 처지에 맞지 않는 취향은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고리사채를 빌려 막대한 빚을 지게 되는 극의 중요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백일의 낭군님>은 뻔하다. 하지만 재밌다. 오랫동안 준비했고 로맨스 코미디로 미덕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걸 수치로 입증했다. 시청률 4%로 출발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다 14.4%라는 시청률 기록을 세운 건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20년 12월 중순 넷플릭스 TOP10에 다시 진입하기도 했다. 잘 만든 원득이 캐릭터 하나면 언제든 빛날 일이다. 



이야기 공부 지수(이야기를 공부할 때 볼 법한 작품인가? 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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