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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Sep 04. 2022

호외요~ 호외

2022.09.01

3월 9일 킥오프 미팅 후로 6개월...

드디어 창고살롱 굿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생애 첫 경험

스티커를 디자인하고 제작을 해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인쇄물을 디자인하고 인쇄소에 맡겨 본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며 콘셉트 설명을 위한 전시용 판넬은 자주 만들었지만 이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 장만 인쇄하여 잠시 보여주고 폐기되는 것이 아닌, 100장 이상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소유될 예정(꼭 그렇게 되기를)이란 것이 매우 큰 차이이다. (그만큼 부담감이 어마하게 크다.)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던 이미지가 A4용지가 아닌, 우리가 선택한 종이(친환경 고급 종이 - 크러쉬 250g)에 찍혀 나오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2022년 9월 1일 11시 30분.

인쇄 감리를 한다고 갔지만 이미 베테랑이신 전문가분들의 손으로 완성되어 나온 샘플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할 틈이 없었다가 더 정확할 것 같다.) OK 사인 후에 몇 분 지나지 않아 앞면 인쇄가 모두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빠른 진행에 어안이 벙벙했다.

인쇄 중
앞면 인쇄 끝

'이거 맞는 거야? 맞게 된 거야? 나 제대로 본 거 맞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눈앞에 실물을 보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장님께 부탁해서 기념으로 한 장 챙겨가지고 나왔다. 거대하고 두툼한 종이를 돌돌 말아 들고 집에 오면서 이제 정말 끝나가는 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디자인 한 첫 인쇄물이에요~여러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곳이 없다.(왜인지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입이 간질간질하지만.. 완성본이 나오면 그때 홍보해야지. 나도 했다고. 너도 할 수 있다고.) 준비하면서 피드백도 주고 고장 난 집에 프린터기를 대신해서 출력도 해다 준 남편에게 제일 먼저 자랑을 했다.(아픈 아이 유치원에 보내고 감리 간다고 눈치를 주긴 했지만 옆에서 의지가 되어준 남편. 고맙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던 분들께도.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일 같이 기뻐해 주신 그분들 덕에 허한 기분이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았다.


디자이너로서 인쇄소에 감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설렌다. SADI를 졸업하고 다른 길로 가게 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길은 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인쇄소에 있는 동안 현실감이 없었던 거 같다. (다음엔 제대로 정신 차리고 예민하게 감리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엽서로 완성된 모습이 아직 그려지지 않고 여전히 실수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닐지 내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안심할 수는 없지만 마무리가 되어 간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감사하다.


나 혼자라면 못 했을 것을 함께였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오탈자를 체크해주고 흔들릴 때마다 잡아 준 창고살롱지기 혜영님. 

스티커 이후 어영부영 거리는 날 정신 차리게 해 준 랄라님. 

나는 PM으로서 마음도 행동도 많이 부족했음을 여기서 고백한다. 

부족한 나를 기다려주고 믿어준 혜영님과 랄라님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 주는 레퍼런서 말들"

굿즈 프로젝트를 하면서 레퍼런서들의 말들을 수집했다.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지만 스티커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19개를 선택했다. (아직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이 남아있다.)

스티커를 제작할 때는 그 문장만으로도 의미가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 부족함이 있었다. 그때는 그 부족함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엽서를 만들면서 깨달았다. 문장 하나에 다 담지 못한 레퍼런서들의 이야기가 있었음을. 그 이야기를 담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 주는 레퍼런서 말들"은 100% 꽉 채워졌다. 


디자인을 하면서 텍스트로만 보다가 계속된 수정으로 반복해서 읽으면서, 읽을수록 말들의 의미를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일잘러일까. 지금 난 어떤 동료일까',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할까. 이 기다림을 인정하자', '지금의 사소함이 쌓이다 보면 나도 무엇 하나는 하고 있겠지?'. 레퍼런서들의 말들 하나하나가 나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원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지만 과정이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스티커 완료 후 나태해진 덕에 마지막에 몰아치듯 바쁜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 육아와 병행하며 버겁고 힘들 때마다 (프로젝트가 지연되어 자책하며 괴로울 때도) 레퍼런서의 말들이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추천한다. 많은 여성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19개의 문장이 모두 와닿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나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 꼭 있을 거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세상 밖으로 내어놓고 싶은 문장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레퍼런서의 말들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굿즈 프로젝트는 여기서 마무리되어도 완전한 끝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 준 레퍼런서 랄라님이 말한 "더 많은 여성에게 서사가 부여되어야 한다." 말처럼 여성들의 서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을 하고는 있었지만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이 너무 부담스럽고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에서 듣게 된 '디자이너'란 말은 왠지 모르게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완전히 인정하긴 힘들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나는 디자이너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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