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G 프로젝트 '잠시만 안녕' 할게요.
지난 5월 말, 두란님의 작업실이 있는 천안에 모여 굿즈를 포장하고 그다음 주에 RBG 팀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회의를 해오다가 오프라인에서 셋이(나, 정은님, 랄라님)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 굿즈인 스티커가 마무리가 되었으니 서로 어땠는지 회고도 할 겸,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기 위해 만났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좀 더 섬세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나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두 분과 헤어지고 내려오던 버스 안에서 ‘재밌고 좋은 건 맞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안 하면 너무 일에만 매몰될 것 같아서 두렵지만, 한편으론 계속 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그동안에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모임날 새벽에 일어나 토해내듯이 썼던 일기장에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있었다.
다시 읽어보니 힘들고 버겁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가 모임에서 나눌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다.
그래서 다음 계획을 논의하던 와중에 ‘계속 함께해도 괜찮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괜찮을 것 같아요.’ 정도로 애매한 답을 했다.
‘어찌어찌하다 보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다른 모임에서 근황을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며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깨달았다.
‘나 뭔가 고장이 났구나?’
안 그래도 최근 몇 주간 누군가 내 감정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나오던 참이었다.
‘어떻게 지내? 잘 지내? 힘들지?’라는 소소한 안부 인사에도 울컥하곤 했다.
애써 괜찮다고 여기며 지나왔던 것들이 실은 괜찮지 않았고 지금도 버겁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삶을 간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RBG 멤버들에게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말을 꺼내고,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몇 가지 일들도 전부 취소했다.
그렇게 지낸 지 이제 한 달쯤 되었다.
이번 주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러고 보니 저 스티커가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만든 거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에 회사 동기에게 한 번 선물한 후로는 서랍에서 꺼내볼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야 내 몫도 하나 챙겨서 사무실 책상에 가져다 두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힘이 되라고 만든 건데 이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니. 세상에.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다 같이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이 이런 굿즈를 만들었다고 말하면 ‘정말 대단하다!’라고 해줬을 것 같다.
문장을 모아 본 덕분에 작년 한 해 동안 휴직 기간 동안 큰 힘이 되어준 이야기들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고, 누군가의 메모장에 기록된 나의 문장도 만날 수 있었다.
내 노트에는 다른 사람의 문장들만 가득하지만 누군가의 노트에는 내 문장이 있다는 걸 보면서 ‘서로가 서로를 기록해주자’ 던 말도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한 텀을 마무리지으며 어땠는지 소감을 말해보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는 좋은 걸 봐도 좋은 줄 모르게 되는 것 같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크지만, 지속 가능한 나를 위해 '잠시만 안녕'을 택하기로 했다.
휴직 동안 꽤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흔들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아직 미처 정리되지 못한 마음으로 하차 소식을 전하느라 횡설수설하며 쓰고 있지만, 언젠가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되리라 믿으며 그냥 이대로 남겨보려 한다.
이런 상황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신 정은님, 랄라님, 혜영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또 다른 굿즈를 기대해보며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