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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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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Dec 23. 2017

<28> 신과 인간

- 바다의 여신 마주

  대만에서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크고 작은 사원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끊임없이 이어진 빌딩의 향연 사이에 불쑥 나타나는 화려한 사원들에 당황하곤 했는데, 이제는 무척 반갑다. 공원 단지의 놀이터 옆에도, 세탁소 옆에도, 은행과 관공서 옆에도 짠!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대만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사원을 자주 방문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곤 한다. 사실 대만의 사원은 종류를 구분짓기가 애매한데, 사찰(불교), 사원 (도교), 묘 (유교) 가 모두 모여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유불선 통합을 어느 나라보다 잘 이룬 대만의 사원에서는 바다의 여신인 마주와 관세음보살과 공자를 한꺼번에 모시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바다의 여신 마주는 대만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믿는 신이다. 그녀를 모시는 천후궁이 전국 각지에 가득하고, 매년 그녀의 생일을 기리는 행사를 도시마다 크게 연다. 그녀를 위한 순례 행사도 있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원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린모니앙은 960년 중국의 푸젠성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날씨를 살피고 약을 만들어 질병을 치료하고 조난당한 이들을 구하며 평생 마을을 위해 살았다.그리고 28살의 어린 나이로 난파선의 선원을 구조하려다가 생을 다하고 만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마주”라 이름짓고 사당을 세우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중국 남부 전역에서 항해와 바다를 관장하는 여신이 되었고, 네 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섬나라 대만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 되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실 우습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신이 된다니. 신은 인간과는 다른 더 절대적이고 더 초월적인 존재여야 하는것 아닌가? 우리와 같은 한계, 같은 결점, 같은 능력을 가진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 경배하고 믿는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신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건 모두 인간 때문이었다. 구원받았다고 느꼈거나, 구원이 있다고 깨달았던 모든 순간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있었다.

  삶이 너무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저 내가 만나는 하루하루의 집합들일 뿐인데, 그저 지금 숨을 쉬며 이어나가는 일상일 뿐인데. 그 때는 삶이 너무 어렵고 무거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나간 과거가 과거가 되지 못하고 발목을 잡을 때가 있고, 오지 않은 미래가 닥친 현실보다 생생하고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시 괜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인간 때문이었다.


  신과 같은 인간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신보다 더 신같은 인간들이 있다. 생전의 마주가 그랬듯, 사람을 돕고 사랑하고 안아주고 베풀고 나누며 한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울의 구덩이에서 손을 내미는 인간들이 있다. 구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들의 목소리가 있고, 내밀어진 손이 있고, 언제고 기억날 따뜻한 온기가 있다.


  어쩌면 가장 신같은 건, 신을 믿을 수 밖에 없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신 같은 인간, 신보다 더 신 같은 인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주를 모시는 사원을 만날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역시 인간의 마음만큼 세상을 바꾸고, 강하며, 오래 기억되는 것은 없나보다.  그래서 신이 되어 영원히 이 세계를 지키나보다.


내 삶에서 신이 되어준 모든 마음들에 감사하게 된다.


타이난의 천후궁




타이중의 천후궁 - 1



타이중의 천후궁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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