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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Sep 05. 2021

02_드럼과 아빠

아빠가 남기고 간 유산


몇 해 전 아빠가 우울증에 시달렸을 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말보다 ‘하기 싫다’는 말을 더 많이 할 그즈음에,

유일하게 의욕을 느꼈던 것은 드럼 연주였다.


아빠는 오랫동안 드럼을 배우고 싶어 했고, 해외의 여러 드러머들을 동경해왔다.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몸을 들썩 거리고 있어 뭘 보나 싶어 가보면 거기엔 어김없이 드럼 연주 영상이  틀어져 있었고,

아빠는 어떻게 찾았나 싶은 외국 드러머들의 화려한 연주를 보면서

입으로, 손가락으로 뚜구두구두구두구를 연발하고 있었다.


한때 아빠가 자주 보던 영상이 있었는데 나보다 어려 보이는 한 소녀의 드럼 연주 유튜브였다.

사람이 많은 넓은 광장에서 자유롭고 경쾌하게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빠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내 엄마 교회의 지인분이 드럼을 가르쳐줬을 때, 그 몇 번의 수업을 받는 동안

아빠는 오랜만에 아이와 같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정식 수업이 아닌 지인의 봉사였기 때문에 수업은 오래가지 못했고 내가 ‘아빠 그냥 학원을 다녀보는 게 어때?’라고 했을 때,

아빠는 ‘변변한 직장도 없이 집에서 놀고 있는 형편에 팔자 좋게 드럼 치러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라고 받아쳤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아빠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에 싣을 수 있는 모든 무게를 담아 전하는 것이었는데.


아빠가 취미로 계속 드럼을 쳤다면 어땠을까.

아빠는 아프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빠가 떠나고,

어쩌다 보니 내가 드럼 레슨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쳤던 건 20대 초반 즈음이라 10년 만에 치는 셈이다.

손도 발도 어색하고 불편한데

어떤 찰나의 순간은 나를 아빠에게로 데려가는 것 같다. 


“드럼은요, 한 마디로 시간의 예술이에요.
주어진 시간 안에서 박자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나의 착실한 드럼 선생님은 단순 드럼 비트를 넘어서서 내게 ‘시간의 예술’을 가르쳐주려고 하신다.

무려 시간의 예술.

그 예술의 세계에 빠지기 위해서 나는 어떤 종류의 용기를 내야 하는데 그 순간이 여전히 부끄러워 잘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친절한 비트를 만나 시간의 예술을 느끼는 찰나,

아빠가 남기고 간 애정과 열정을 동시에 느낀다.

드럼을 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살고 싶은 삶을, 아빠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온몸으로 관통해내는 기분.


사실은 드럼뿐 아니라 살다가 마주치는 아빠의 표정이 묻어있는 모든 사물, 시간, 사건들이,

사소하고 큼지막한 모든 것들이,

아빠가 내게 주고 간 것 모든 것들이,

마지막 유산처럼 느껴진다.


어떤 것은 너무 사소해서 ‘에이 이까짓게 뭐라고 못하고 살았어’라고

또 어떤 것은 너무나 찬란해서 ‘이런 것은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그 유산을 마주한다.


놀랍도록 매일매일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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