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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Feb 05. 2022

05_오토바이는 죄가 없다.

생각보다 내성적인 취미



다시 말하지만 임신을 해서 불편한 점에 대해 순위를 매겨보자면

오토바이를 못 타는 것이 단연코, 무조건, 압도적 1순위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이런 거창한 표현은 싫지만) 나의 인생은

오토바이를 타기 전과 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심이 듬뿍 담긴 무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걸까.

오토바이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늘 부담이 앞선다.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를 다 담아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이다.

나 말고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일 텐데 내가 그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바보 같은 눈치도 본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고마운 것에 대해 써보자! 고 하니, 조금은 쉽게 잘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먹은 것은 꼭 OO야 하는 아이 었다.

사람마다 OO에 들어갈 동사는 다를 텐데, 이를테면 나는

‘먹어’야 하는 사람이나

‘사봐’야 하는 사람 쪽은 아니었고,


‘읽어’야 하는 사람

‘가봐’야 하는 사람 쪽이었다.


그러니 어쩌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 가보고 싶은 서점’이라도 생기면,

밤이고 낮이고 엉덩이가 들썩 거리는 것이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이 오토바이였다.

대체로 가보고 싶은 서점들은 동네 골목 구석에 위치해있거나,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에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타면 쉽고 빠르게, 대중교통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이나 꽉 막힌 도로 사정에 시달리지 않고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다.

시간의 마법사가 되어주는 데다가 가는 길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하게 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이동수단이 있을까. 가는 길이 즐거우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지치기는커녕, 기분 좋은 예열이 끝나 있는 것은 보너스다.


특히 사당동 회사를 다니던 시절, 한남동을 지나 남산길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광화문 거리를 지나 서촌에 있는 서점에 가는 것이 좋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그 길을 따라 여행하듯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


게다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훌륭한 이동수단이다.


남편과는 대체로 여러 가지 부분이 잘 맞았지만

유난히 계절을 만끽하고, 느끼는 부분이 잘 안 맞았다.


봄과 가을이 오는 냄새, 한 여름 아스팔트 위로 쏟아진 소나기가 마르는 냄새, 눈 내리기 전 냄새 같은 것들은 … 오롯이 혼자 발견하고 즐거워해야 할 몫이었다.

어릴 적부터 계절 냄새를 생생하게 맡는 것이 좋아 콧구멍을 벌렁 거리며 걷기를 좋아했으니

계절 냄새가 진하게 나는 곳을 찾아 오토바이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좋을 수밖에.


-


용도에 따라 오토바이를 익숙하게 타기 시작하면서 대체로 두 대, 세 대를 운용했는데

빠른 속도를 즐길 수 있는 400cc 정도의 스포츠 바이크와 서울 시내와

동네를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는 스쿠터 혹은 언더본 형태의 바이크를 번갈아가며 탔다.

(물론 중간중간 기변과 기추를 자주 했지만..)


서울을 벗어나 멀리 라이딩이나 여행을 갈 때는 무겁고 빠른 높은 배기량의 바이크가 제격이고,

서울 여행을 다니거나 출퇴근 용으로는 작고 귀여운 스쿠터면 충분했다.

각각의 매력이 너무나 다르고 명확해서 어떤 것이 더 좋다라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 한 대만 소유하는 것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오토바이를 두 대, 세 대씩 가지고 있다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들은

‘헤엑~ 엄청 외향적이신가 봐요.’라고 하는데 오토바이를 타면 탈수록 아무리 봐도 내면을 향하는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간혹 무리 지어 다니는 동호회 사람들도 있지만, 운전을 하는 순간만큼은 도로 위에 오로지 혼자다.

신호를 지키는 것도, 길을 정하는 것도 가는 것도 멈추는 것도 나의 몫이다.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조용하게 타는 것을 선호하기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꽤 오래, 진지하게, 깊게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사람들과 차 사이에 있지만 온전히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지만 격하게 혼자 있고 싶은 심리와 묘하게 잘 맞는달까.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고민이 있을 때, 오토바이를 참 많이 탔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오토바이와 라이더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위험하고, 사납고, 시끄럽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세상 모든 탈 것들이 그렇듯 안전하고 조심히, 주변을 배려하며 타는 방법이 있고, 언제나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오토바이는 죄가 없다.

오히려 오토바이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시간들이 많다.

여전히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다.





한 3년 전, 오토바이를 타고 경기도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때, 할리데이비슨을 탄 할머니 할아버지 무리들을 보았다.

가죽 재킷과 태슬, 체인과 두건까지 완벽한 착장에 홀딱 반해버렸는데,

운이 좋게도 근처 맥도널드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었다.


가죽 재킷을 입은 할머니를 화장실에서 만나 인사를 하자,


“젊을 때 많이 많이 돌아다니세요~ 우리는 지금 70이 넘었지만 전국 방방 곡곡 안 다니는 곳이 없어요~”


라고 하셔서 나도 모르게 껴안을 뻔했다.

만났다 내 롤 모델.


오토바이를 더, 열심히, 부지런히 타라는 말을 해주는 어른은 처음이었다.

늘 오토바이를 탄다고 하면

‘이제 위험하니까 그만 타야지~’

‘탈만큼 탔으니까 그만 타~’

‘나 아는 아무개도 오토바이 타다가 다쳤다(혹은 죽었다.)’

‘차 타고 다니지 무슨 오토바이냐’라는 소리를 듣는게 익숙했다. 물론, 그들의 애정 어린 조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묻고 싶다.

정말 위험한 거 맞냐고,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고 엄마 아빠가 되면 안 타는 게 정말로 맞는 거냐고.

그렇지 않으면, 철이 없고 위험을 즐기는 게 되는 거냐고.


폭주족은 사륜에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쪽이 훨씬 질이 나쁘다.
무기를 실을 공간이 있고, 눈이고 비고 개의치 않고, 별로 지치지도 않기 때문에 행동반경도 넓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폭주족은 오토바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져 운전자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고 말았다.
지옥같은 교통전쟁의 온갖 원흉과 책임을 얼버무리기 위해 오토바이를 제물로 삼은 느낌이다.

물론 이륜이 사륜보다 위험도가 높다. 몸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로도 넘어져 다친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 과격한 패거리를 구실로 삼아 젊은 사람에게서 오토바이를 빼앗아버려도 괜찮을 것일까.
빼앗을만큼 빼앗고 대신할 것은 주지 않고, 그저 조용히, 얌전하게 소위 ‘착한 아이’라는 부모다운 기준을 통용시킨 결과,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기준이 감동에는 무디고, 의지하는 마음만 강하고, 당연히 자립심도 없는,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타산적인 젊은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오토바이를 스릴과 스피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만으로 타는 사람은 목돈을 손에 넣었을 때에 곧바로 사륜으로 갈아탄다.
오토바이를 타서 느끼는 감동은 쉽사리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옛날에 말을 타고 길을 떠날 때와 똑같은 감동으로,
오늘날에 보기 힘든 낭만이기도 하다.

- 마루야마 겐지, 취미있는 인생(바다출판사)



나는 한 번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오토바이를 탄 적이 없다. 앞으로도 스릴과 안전을 바꾸면서 오토바이를 탈 생각이 없다.

위험하지만 재밌어서 목숨을 걸고 탄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의 바람과 목표는 안전하고, 오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고 오토바이가 아닌 그 무엇이라도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곁에 오래 두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 오토바이는 죄가 없다.

나의 첫 바이크, 벤리 110. 거의 뭐 다마스처럼 싣고 다녔다.
(왼쪽) 첫 매뉴얼 바이크, MSX 125. (가운데) 이후에 빨간 MSX 125로 기변을 했는데, 제일 잘 타고 다닌 녀석 중 하나.



왼쪽은 서촌 골목, 오른쪽은 전주 한옥마을인데 왜 같은 골목 같지. 배기량을 높여 SR 400이란 모델도 잠시 탔었다.
같은 400cc 인데 정말 괴물 같았던 CB 400.
처음으로 산 신차는 C125였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모델.
C125 타고 서울 여행을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어쩌다보니 지금 보유하고 있는 두 모델은 닌자 400과 큐빅스.

+ 피저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인생 바이크’를 찾으려다 보니 짧은 시간 기변, 기추를 많이 했다.. (사진에 없는 것들도 많다. mt03, gsx 125, 티니110, 그리폰 400… 아 닌자 300도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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