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나의 탄생과 관련된 구전 중에 마음에 드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밥맛이 좋아서 (나 말고 아빠가)한 달 만에 무려 8킬로가 쪘다는 이야기랑 내 이름을 ‘박하향’으로 지을 뻔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름에 관한 사연을 생각할 때마다, 젊고 어린 나의 엄마 아빠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딸아이의 이름을 수백 개씩 불러보고, 써보고, 고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밤낮으로 이름을 놓고, 노트에 적어가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너무나 기발한 이름을 생각해내고 기뻐하며,
과연 아버지(내 할아버지)께서 허락하실까 긴장하고 두근거렸을 부부의 모습.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대차게 거절당하고 돌아온 아빠의 시무룩한 모습.
(“이름이 박하향이 뭐냐 박하향이!!!!! 내 손녀 이름은 내가 짓는다!!!!”)
결국 할아버지가 작명소에서 받은 흔하고 평범한 이름에
정을 붙이고
멜로디를 붙이고
내가 장성할 때까지 그 이름으로 노래를 지어 부르는 모습.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엔 본명으로
그냥 부를 때는 “따님아”
핸드폰에 저장할 때는 “딸 꼬맹이”
뭘 부탁할 때는 “딸아”
너무너무 좋을 때는 “따님아~따님아~(고유의 멜로디가 있다.)”
아빠가 사라지고 난 뒤에 내 이름으로 노래를 지어 부르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나를 불렀던 아빠의 모습이 엄청난 사랑의 기억이 될 줄 알았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웃어줄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우리 부부는 진작부터 아기 이름을 정해두었다. 수십 번의 고민과 번복 끝에 나온 이름이었기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에 들었다.
나의 경우엔 친정에 가서 ‘이름을 OO라고 짓기로 했어.’라고 통보하면 끝이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아버님께서 반대할만한 이름이었으니 적절한 이유를 가진 적당한 설득의 시간이 필요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이 이름을 밝히자 역시나 아버님은 탐탁지 않아하셨다.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낳으면서 어쩌면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라는 표현보다는 그것이 전제되어야 ‘그제야 일이 시작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직간접적인 경험상 한국 남녀는 유난히 부모로부터 정서적, 정신적 독립이 늦는 것 같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서 이번의 경우와는 반대로 내가 친정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들도 지금껏 참 많았다.
남편과 내가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한채 결혼을 했더라면 보다 많은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했겠지만, 어쩌면 그 독립의 과정도 결혼 후에 할 수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하고 지혜롭게 지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의지이니까.
어쨌든 이름을 컨펌받는 과정이 ‘정말 이럴 일인가?’ 싶을 만큼 길었지만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손뼉 쳐주고 싶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독립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집에 가서 엄마한테 내 이름이 너무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나는 밤 열두 시에 태어났는데 여아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이
그때부터 밤새 머리를 맞대고 옥편을 찾아가며 지으신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거였습니다.
그 후 다시는 내 이름에 대한 불평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불평은커녕 새 생명을 좋은 이름으로 축복해주려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두 남자,
점잖고 엄하기로 집안에서 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상투 튼 할아버지와 젊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존중받고 사랑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남녀차별을 많이 할 때였습니다. 특히 시골에서는 더 했습니다.
시골 동무들 중에는 ‘간난이’, ‘섭섭이’ 등 어린 마음에도 아무렇게나 성의 없이 지은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애도 많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에 비해 나는 특별한 대접을 받고 태어난 것처럼 느꼈고,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지만 나는 결코 불쌍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존중할 수 있는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나는 우리 아기에게 우리가 이름을 짓게 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싶다.
그 이름을 짓게 된 이야기를 하면서 ‘네가 얼마나 사랑받은 아이인지’ 전달하고 싶다. 이 역시 부모의 욕심이려나 싶지만 내가 아빠에게 들은 ‘이름을 지을 뻔한 이야기’ 조차도 나에게 오래오래 영향을 끼쳤으니, 사랑이 실린 이야기가 주는 힘을 믿고 싶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우리 아기의 이름이 곳곳에서, 특히 아버님의 입을 통해서도 사랑스럽게 불려진다. 축복받은 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