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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Dec 16. 2022

우리끼리 하는 우당탕탕 어린이집

셰어하우스에 삽니다.

부부 셋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셋과 곧 태어날 (남의) 아이 하나. 그리고 미혼인 동생 한 명.
총 11명과 함께 뒤엉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만 6개월이 되어가는 보니를 키우고 있습니다.


새벽에 보니가 많이 울었다.

평소보다 분유를 많이 먹어서 배가 불편했던 것 같다. 첫수는 일부러 210ml를 줬는데 두 번째 수유 텀에도 꿀벌이가 실수로 210ml를 줬다고 했다.

막수도 예정대로 210ml 줬으니 평소보다 총량이 꽤 오버한 셈이다. 한참을 울며 안 자서 남편이 결국 새벽에 일어나 안고 재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 없단 듯이 천사처럼 자는 보니 얼굴은 귀여웠다. 화장실 얼굴에 비친 내 얼굴은 안 귀여웠다.

-

점심시간에는 사무실 근처 서비스 센터로 핸드폰을 고치러 갔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무상으로 처리됐다. 아싸.

어제 휴대폰을 떨어뜨린 2호와 날개에게 화라도 냈다면 몹시 부끄러웠을 것이다.

수리가 다 끝나자 1시 52분. 회사까지 걸어가면 늦을 것 같아서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킥보드를 빌려서 달렸다.

도착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카톡방이 울렸다.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고 있는 친구 중 하나인 아리였다.

'나 이번에 채취한 거 2개 수정됐대 ㅜㅜ '

아리는 나랑 동갑이다. 몇 해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여러 번 반복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치료를 수차례 받다 보니 약을 끊어도 호르몬은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는 판정까지 받았다.

그런 아리가 기적적으로 생리를 시작한 것은 올해 초였다.

아리는 바로 시험관을 시작했다. 난임센터에 자기가 제일 어려 보인다며 말하는 아리의 웃는 얼굴 속에 여러 가지 모양의 절망과 두려움,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임신의 길은 험난했다. 수정은 고사하고 난포 채취도 번번이 실패했다. 간신히 채취한 난포가 공난포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이나기도 했다.

아리가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같이 긴장했고 같이 울었다.

세상에는 반복된다고 해서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 같다. 남들에게 쉬운 일이 나에겐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면서 매번 같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아리는 누구보다 살뜰히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아리만큼 우리 아이들을 환영하고, 유쾌하게 대하고, 열심히 밥과 간식을 만드는 사람은 없었다. 아리의 손과 얼굴에는 질투가 없었다. 부모들에겐 최고의 스펙을 가진 교사였다.

우리는 돈을 모아 아리의 병원비, 택시비를 내줬다. 아리는 네 번이나 같은 터널을 지났다. 날이 갈수록 마음이 약해지기도 또 단단해지기도 했다.

그런 아리의 몸에서 이번 달에 채취한 2개의 난자가 수정까지 성공했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사람마다 눈물이 난다고 답했다. 수정된 생명체가 소중하고 기특하고 고마워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일단 이번 난자는 얼려두고 다음번 생리 때 다시 한 번 채취를 해서 여러 가능성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다 정말 쌍둥이를 낳는 것 아니냐며 단톡방이 왁자지껄했다.

아이를 같이 키운다는 건 뭘까.

한 놈이 울면 따라 울고, 서로의 장난감을 뺏고 빼앗기며 전쟁이 일어나고 깨트리고 넘어지고 시장통이 따로 없지만, 서로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이 경험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이라서 그리고 또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라.

앞으로 휴대폰이 몇 번은 더 고장이 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늘어나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수십 번 박살 나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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