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어디까지 가봤니
태국에서 지낸 지 어느덧 7일 차.
설레는 마음을 안고와도 끊임없는 행군과 밀어 넣는 새로운 음식로 몸이 지칠 법도 한데, 태국에서 지나가는 시간이 뒤돌아서면 금세 아쉬워지는 것.
멋쟁이 아저씨의 은밀한 공간
여행의 마지막 숙소는 말 그대로 피날레이지 않은가? 그만큼 태국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찜해두었던 숙소였다. 매거진B를 뒤적이며 발견했던 숙소, 더 부톤.
태국에는 깨끗하고 호화스러운 숙소도 많지만 책 속의 사진들이 30년 전 태국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아늑한 느낌이었다. 실험적일 수도 있지만 조금이나마 더 현지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예약하게 되었다.
대로변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 사이 겨우 찾은 숙소.
웃을 때 눈가 주름이 인자해 보이는 중년 아저씨가 슬리퍼를 신고 나오셨다. 그동안 만났던 넓은 호텔 인셉션과는 사뭇 다른 첫 만남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집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솔직히 말해 약간 으스스했다. 중세시대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누군가의 집을 몰래 방문하는 기분이랄까.
이렇게나 널찍한 건물에 우리밖에 없다고? 존재감이 큰 딸랑이 열쇠만 남기고 주인아저씨는 사라지셨다.
화장실부터 냉방시설 등 편의성만 따지고 보면 이 숙소는 불편함 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 집에 놀러 와 지내는 느낌으로 둘러보기 시작하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포인트들을 공간 곳곳 발견할 수 있다. 이 숙소는 왕궁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는데, 역사의 유산을 보존하는 측면에서 건물의 창문이나, 바닥 소재 등 완전히 새것으로 바꿀 수 없는 제약이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 맛을 살려 주인장 아저씨는 앤틱한 가구와 오브제를 채워두었고 아저씨의 취향을 가득 담은 공간이 된 것이다! (어눌한 대화를 나누어본 결과, 주인장 아저씨는 건축 디자이너로 추정됨)
다음날, 주인장 아저씨는 베란다에 4단짜리 도시락으로 호화스러운 브런치를 만들어주셨다.
밤에 보니 숙소 뒷 쪽 찐 주민들의 동네 음식점으로 시끌시끌했는데, 그 가게에서 아침을 사다 도시락을 만드신다고 한다. 팟타이부터, 새우만두, 과일 등등 아침으로 먹기에 속이 놀랠정도의 푸짐한 식사를 챙겨주신다. 아침식사만 아니었다면 후회 없이 다 먹어치웠을 맛이었다.
접시들과 코스터들이 귀여워 어디서 구매하셨는지 여쭤보았는데 모두 직접 플리마켓을 방문해서 모으셨다고 한다. 손맛이 느껴져 너무 예뻐하니 여러 개 있다며 우리 것을 선물로 내어 주셨다.
망고를 닮은 귀여운 아가씨
태국에는 마무앙이라는 일러스트 캐릭터가 있다.
마무앙은 망고라는 뜻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정말 망고를 닮았구나! 태국과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라며 동훈이 소개해주었는데 샵이 마침 가까운 곳에 위치해 겸사겸사 방문했다. 큰 가게는 아니었지만 길을 건너자마자 보이는 표지판, 가게 앞 간판에서도 마무앙 그림이 맞아주었다. (태국의 와우 포인트 중 하나가 가게 인테리어나 팝업 매장의 디테일 완성도가 높다는 점!)
매장에는 각종 스티커와 서적, 굿즈들이 가득했다. 뜻을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스누피 네 컷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소소하고 행복해지는 에피소드가 가득한 일러스트였다. 그중 내 눈길을 끌었던 건 귀여웠던 건 아이스크림이었다. 귀엽다고 말하면서 먹어치워서 미안해..!
방콕을 여행하는 마지막 날
태국의 8일 차, 저녁 10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짐을 끌고 마지막 여행을 시작했다. 우선 주전부리를 사기 위해 BigC 마트에 들렀다.
기념품 가게에 가서 예쁜 물건을 사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진짜 쓰고 먹는 공산품을 구경하는 것이 여행의 찐 재미 아닌가! 이 나라만의 개성이 담긴 그래픽과 식재료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태국은 참 스낵마저도 똠양꿍, 망고맛이다. 돌아가면 금세 그리워질 맛들.
태국 마트에서 발견한 특징은 한국의 소주처럼 태국에도 즐겨먹을 수 있는 전통주류가 많다는 것이다. 장바구니에 담을 순 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결제는 5시부터 가능하다. 비건 식자재도 코너도 조성이 잘 되어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쏨땀이 그리워질 것 같아 피시소스를 들었다 캐리어가 무거울까 도로 내려놓았는데, 한국에 돌아와 매우 후회했다. 가격도 종류도 태국에서 사는 것이 훨씬 좋으니 꼭 담을 것!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더 스탠다드호텔 마하나콘이었다.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 전반에 참여했다고 한다.
하이메 아욘의 가구와 아트워크에서 보았던 발랄한 색채와 형태가 호텔 전반 컨셉에 반영되어 마치 전시장을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를 모두 예약한 후 알아버려서 객실은 경험하지 못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굿즈샵과 공용공간을 둘러보았다.
곡선 형태로 마감된 공간 구조에 페인트를 들이부은듯한 이 공간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고급스러운 호텔 디자인의 이미지를 바꾸어주는 느낌이다. 경쾌한 색감이 자칫 공간을 저렴해 보이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고급스러운 패브릭이나 그래픽과 어우러지니 오히려 색다른 고급스러움에 재미마저 느껴지는 것. 아쉽게도 나는 이때부터 배탈이나기 시작해 맥주와 음식은 제대로 먹지 못했다. 다음에 오면 꼭 한번 와보는 걸로!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엔 태국을 잊지 말라는 듯 무서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맞은 생쥐 모습을 한 우리를 보고 택시 기사 아저씨와 껄껄 웃으며 우리의 태국 여행은 막을 내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벌써 2번의 쏨땀을 해 먹고 3번의 태국요리 가게를 방문했다.
현지에서 맛본 매콤하고 시큼한 그 맛은 똑같이 만날 수 없었다.
털옷을 잔뜩 껴입고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태국의 뜨거운 여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쉬워서 어쩌지. 보고 싶은 태국, 우리 금방 또 만나자! 컵쿤 카!
info
The Bhuthorn : 숙소도 재미있지만, 밤이 되면 바로 뒷길 동네 주민들의 맛집이 오픈한다!
MAMUANG shop : 매장은 정말 작고 귀여워요. 일부러 가긴 뭣하지만 지나가다 만나면 꼭 들러봐요.
Big C market : 태국의 이마트. 캐리어도 무료로 맡겨주니 꿀 이득.
The only Market Bangkok : Siwilai store에 위치한 방콕 컨셉 굿즈 스토어. 나이스웨더가 생각나는 곳
the standard bangkok : 앞으로 더 핫해질 호텔. 얼른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