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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Aug 18. 2020

나의 사수팔자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사수와의 이야기

첫 회사를 어디로 들어가느냐보다
첫 사수가 누구인지가 앞으로 회사생활에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8년 전 첫 회사에 합격하고, 회사 주변에 집을 알아보다가 문의할 게 있어서 앞으로 사수가 될 회사 대리님(채용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안 먹었으면 저녁 사주신다고 하셔서 당시에도 사양하는 걸 잘 몰랐던 나는 부동산 일이 끝나자마자 냉큼 달려갔었다.


맛있는 사천탕수육을 먹으며 평소에 대리님께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대리님의 꿈은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삶을 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들을 컨설팅해서 더 좋은 조직과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이상적인 말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감 있게 말하는 사람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꿈의 방향이 같다고 생각해서 설렜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계셨고,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느껴졌다.



대리님은 나를 엄청나게 공부시키고 트레이닝 시킬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은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공부도 탄탄하게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책도 많이 읽히고 외국원서는 번역도 시키고 스터디 모임에도 많이 데리고 갈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직급 권한 이상으로 일을 계속 맡아야 고민도 많이 하고 실력도 쌓일 거라며 큰 일도 많이 주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또, 본인이 해온 만큼만 할 수 있으면 발전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배운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다고 하셨었다. 회사 생활이 결코 쉽고 편할 리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뻤다. 그리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분이 내 사수여서 정말 많이 배웠고 생각보다 오래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업어 가르치던 사수가
우리 회사 바로 앞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다.



이렇게 많고 많은 회사들 중에, 그것도 갑자기 스타트업으로 이사왔는데 우리 회사 바로 옆이라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뜻 모를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그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남부끄럽지 않게 잘 가고 있나?



돌아보니 이제 내가 그때 대리님 정도의 연차가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핵심가치 교육을 혼자 맡던 날, 막막하고 두려웠던 전날 밤이 생각난다. 그 동안 대리님이 해오던 것에 누가 되지는 않을 지, 이대로 하는 게 맞을 지 밤새 고치고 고치고 고치기를 수십 번 했던 시간들. 그리고 혼나기도 했던 시간들이 하나씩 쌓여 교육장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수나 팀장님을 대하는 것보다 팀원들을 대하는 게 훨씬 어렵다. 나도 부족한 사람인데 어떻게 팀원들을 대하고 성장에 도움을 줘야하는지.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가끔은 막막해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룰 때도 많다.


8년 전 지금보다도 더 부족했던 나를 보고 사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했을까. 이제와서야 그 때 사수의 마음이 이랬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 때는 부족함이 별로 없어보였던 사수도 사실은 꽤 막막하고 고민이 많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고 성장하기를 늘 바라줬던 그 마음이 참 고맙다.


나는 지금 우리 팀원들에 대해서, 그리고 내 일에 대해서 온 마음을 다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 글을 쓰던 밤, 다음 날이 회사 창립 기념일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밤 늦게까지 팀원이 준비하고 있어서 혹시 도울 것은 없을까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름 애쓰는 부분들과 함께 내가 했던 실수와 부족함들이 보였다. 그렇게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씩 메꿔가며 더 성장하고 꿈에도 더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이제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별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 회사 지하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그 동안 갖고 있었던 고민들과 궁금증을 질문했다. 베트남에 가 계셔서 못 봤던 2년의 시간 그 이상으로 사수는 두 세 뼘은 더 자라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가지 현실적이고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지만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사수는 8년 전처럼 이 한마디로 나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너는 계속 자신을 낮추려고 하는데 그게 안타까울 때도 많았어.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너는 실수는 할 수 있어도 실패는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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