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대한 호불호를 쥐어짜보는 신포도
(2020년 여름 작성)
오늘 내 모닝콜은 형체가 없는 누군가가 창문과 현관문을 텅텅텅 두들겨대는 둔탁한 소리였다. 비바람이 부는 태풍. 아침에 일어날 때 이런 날씨이면 아무래도 맥이 빠진다. 바깥 활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우산을 써야해서 양팔이 자유롭지 못하고 신발과 가방의 선택의 폭도 줄어든다. 미처 방어하지 못한 팔다리에 튀는 빗물들은 또 어떻고. 꿉꿉한 비냄새에 찌뿌드드한 기분까지 모든 비호감이 원기옥처럼 뭉쳐 내가 기쁠 수 있는 일말의 기회조차 남기지 않고 저버리는 그런 날씨다. 그래도 요즘 재택근무 중이라 집에서 가만히 앉아 창밖에 머리채 휘날리는 가련한 나무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눈오는 날은 ‘20대 초반까지는’ 너무 좋았다. 눈을 보기 힘든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 이유로 함박눈이 오는 모든 날이 크리스마스처럼 기뻤다. 그리고 출근을 하는 신분이 되자 놀랍게도 눈오는 날이 싫어졌다. 내리는 눈은 입으로 손으로 머리로 받아내고자 했던 내가 시크하게 우산으로 눈을 흘려보낼 때 나는 스스로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판결내렸다.
그렇다고 파란 하늘의 쩅쨍한 날씨를 좋아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해가 자기주장 강한 날도 영 좋지 않다. 그런 날씨는 귀찮아서 선크림을 자주 빼 먹곤 하는 나의 까만 피부를 더욱 시커멓게 태워버릴 뿐이다. 내심 지드래곤이 양산을 유행시키기를 기다렸지만 참다 못해 먼저 사버렸다. 2년 전인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에는 다들 할머니냐고 하다가도 정작 내 양산 아래 함께있길 원했다.
궂은 날씨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 누군가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날씨는 무엇이냐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뜨거운 해는 예전만 못한데다 구름이 적당하게 가려주어 올려다봐도 미간을 찌푸릴 일이 없는 그런 하늘을 가진 날씨. 구름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높고 청명하며 살짝 쌀쌀해지는 바람이 느껴지는 10월 중순쯤 부터 11월 넘어가는 바로 그 때. 반팔을 입으면 바람이 스칠 때마다 살짝 닭살이 돋고 자켓을 걸치면 적당하며 비올 확률은 0에 수렴해 좋아하는 신발과 가방을 부담없이 맘껏 장착하고 나갈 수 있다.
이제는 사이언스인 '수능 추위가 몰아닥치기 직전' 찰나의 순간. 노을마저 최고인 그 날씨를 나는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그 시즌 특유의 냄새도 정말 좋아한다. 비록 올해는 마스크 속에 갇혀있을 코가 그 냄새를 감지할 지 미지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