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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 스토리텔러 Oct 22. 2022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사랑'

피렌체에서 경험한 단테와 베아트리체 이야기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를에서 충격을 받은 이후 며칠이 지나있었다. 남프랑스의 따듯한 햇살 덕분에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거절감이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준 그가 여전히 미웠다. 내가 옹졸해서 그냥 덮어도 될 일을 까칠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이러다 괜한 부스럼을 키워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서둘러 괜찮은 척하고 싶지 않았고 우선은 여행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니스에서 생애 처음으로 밤 버스를 타고 제노아를 거쳐 피렌체에 도착했다. 사랑의 도시 피렌체를 다시 찾은 이유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야기가 진심으로 궁금해서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믿을 수 없었다.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관하여서'

단테(Dante Alighieri)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났고 그의 본명 두란테(Durante)는 참고 견디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행하던 시기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인물로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신곡'은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다. 


피렌체의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단테는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했고 볼로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시인, 정치가 철학자의 삶을 살았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첫 만남은 단테가 9살이 되었을 때 교회 문지방을 넘다가 부딪히면서 잠시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소녀는 재빨리 지나갔고 서로 대화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소년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소년은 얼마 후 그 소녀가 부유한 귀족 은행가 집안(Florentine Folco Portinari)의 딸이고 이름이 비아체(Bice)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9살 소년은 단 번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찌 되었든 그녀를 향한 연모가 시작되고 소년은 그녀의 이름 비아체(Bice)를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변경하여 부를 만큼 소녀를 사랑했다. 


사랑에 무슨 명분이나 근거나 이유를 대어보라고 묻는
내 질문 자체가 모순이긴 하다. 

9년 후 그들은 그 유명한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때 성숙한 숙녀가 된 베아트리체는 단테에서 눈인사를 먼저 건넨다. 너무 갑작스러워서였을까. 청년은 숙녀의 눈길을 피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를 받은 청년 단테는 행복해졌고 그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된다. 몰락한 가문의 단테와 현재 잘 나가는 귀족 가문의 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Beatrice Portinari)의 만남은 현실에서 맺어질 수 있는 운명은 아니었다. 중세사회는 귀족일수록 사랑과 결혼은 별개인 정략결혼이 보편화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Henry Holiday 1883, oil on canvas. 두 번째 만남 


그녀는 은행가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홀아비였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보다 더한 불행이 왔다. 그녀가 그만 아이를 출산하던 중 사망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 나이 불과 24살(1290년) 때였다. 이로 인해 단테는 깊은 상처를 입었고 라틴문학의 세계로 도피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감정을 담은 영감 어린 시를 완성한다. 그 시가 바로 그녀가 죽은 다음 1292-94년 사이에 발표된 'La mia salvezza Beatrice(나의 구원 베아트리체)'라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관하여서'이다. 단테에게 그녀는 치명적인 뮤즈였던 셈이다. 


단테가 곧장 지속적으로 문학의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문을 일으키려 했을까. 베아트리체를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 때문이었을까.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 공화국으로 교황 중심의 구엘 피(Guelfi) 당과 황제 중심의 기벨리니(Ghibellini) 당으로 나뉘어  서로 통치권을 갖기 위해 대치중이었다. 약사 길드에 속한 단테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구엘 피(Guelfi) 당에 속했다. 단테는 피렌체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는데 불과 8년 만에 피렌체 시의 통치자인 (Priorita) 쁘리오 리타가 될 만큼 성공했다. 하지만 단테가 속한 교황 파인 구엘 피(Guelfi) 안에서도 교황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백 당파와 인정하지 않는다는 흑당파로 나뉘어 끊임없는 충돌하고 있었다. 그가 외교관으로 로마로 파견 나간 사이에 두 세력은 크게 충돌하고 백 당파에 속한 단테는 흑당 세력에 의해 축출되고 모든 재산은 몰수당하며 피렌체로 들어올 경우 사형시켜도 된다는 판결까지 받는다. 결국 순식간에 졸지에 망명자가 되어 가족들과 이별하게 된 채로 죽기까지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멸문 지하의 참사를 겪게 되고 고단한 망명자의 삶을 살게 된다. 

망명자가 된 그는 다시 시인이요 철학자로 회귀하고 '신곡'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다. 종신 유배자의 신분이 된 단테의 정치적 불운으로 인한 삶은 불행했지만 그 덕분에 그의 회고적 시간의 기록인 '신곡'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받게 되었다. 



단테는 신곡에서 운명적인 사랑의 연인인 베아트리체를 자신을 구원한 천사로 불멸의 존재로 재탄생시킨다. 그리고 그녀를 매개체로 인간은 누구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분임을 상기시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영적 여정을 제시한다. 

20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단테 사후 700주년 행사를 보면서 지금처럼 혼란한 시대에 더더욱 단테의 정신이 필요하다며 성대하게 치르는 행사를 지켜본 적이 있다. 단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추앙받는 존재가 됨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그의 이름의 본래 뜻인 '장수하는 날개를 가진 자'라는 이름처럼 7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이 깨어나기를 원하는 자들을 각성시키고 있다. 



이렇듯 그의 지성을 일깨운 뮤즈 베아트리체가 어찌 아니 부러울 수 있겠는가; 
부럽다. 부럽다. 그녀가 부럽다. 왜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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