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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 스토리텔러 Nov 01. 2022

당신이 지금 너무 힘들다면;

나는 지금도 가끔 GRGR을 한다

라틴어로 이미지를 말하는 '이마고 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구뇌와 신뇌가 있어요.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도, 결혼을 하게 되는 것도 어린 시절 구뇌에 저장된 기억과 연관이 있어요. 

어느 한 부분이 아버지나 어머니와 닮았기 때문에 끌리는 거지요. 상처를 입었는데, 왜 하필 비슷한 대상을 고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놀랍게도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어린 시절 아이의 의지라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그때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거지요. 우리는 그런 이유로 지금의 상대를 만나 가족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순수한 아이의 열망과 별개로 상처를 받고 자란 우리들은 아직 자유롭지 않다는 거지요. 그래서 대상과 시제를 헷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곤 아닌 것을 알면서도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이기적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현재의 남편이나 아내에게 쏟아내게 되는 것이고, 정신이 들면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어린아이의 선택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상대가 소리치는 부분이 나는 가장 듣기 힘든 것이지만, 바로 거기에 치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듣기 힘들어도 아주 평온한 상태에서 무장해제하고 들어 보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말은 그 남편이 고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간청하는 말은 아내가 성장해야 할 부분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아직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옳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대에게는 억울한 느낌을 줄 수 있고, 과장되게 들리기도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상대는 귀와 마음을 닫게 되고, 내가 해결 받고 싶어서 간청한 말들은 모두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가 될 뿐인 거죠; 


구뇌는 생존 뇌와 편도체(Amygdala)가 있어요. '아미그달라'는 공포와 불안과 관련된 정서적인 기억을 저장합니다. 이곳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대처방식을 명령하죠. 그래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뇌는 대상과 시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신뇌는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신뇌만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 신뇌가 바로 전두엽입니다. 그러니 결국 전두엽을 발달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반복적인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구분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대상과 시제를 헷갈리지 않도록 감정이 먼저 솟구치면 몰아가지 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 감정 너머를 직시해보려고 해야 합니다. 모든 감정이 진실한 것이 아니거든요. 감정은 어린 시절 공포스러웠던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감정 너머에는 현재, 어른인 내가 있어요. 내가 정신이 맑을 때는 얼마나 사리분별력이 있고 지혜로운지 아시잖아요. 그런 나를 믿고 두려움이 오면, 내가 두려워하는구나, 슬픔이 오면 내가 슬퍼하는구나 하면서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린 시절 상처는 공통적으로 '외면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내가 외면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죠. 결국 자기를 성장시켜줄 사람은 자기 외엔 없어요. 어린 시절 결핍감을 주었던 그 대상을 불러와 야단치고 원망해도 해결되지 않아요. 결국 자기 몫이더라고요. 내가 성장해야 내 상처도 보듬을 수가 있는 것이더라고요. 거리감 느껴지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전두엽이 깨어나는 만큼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인 셈이죠. 


아이러니한 것은 그 전두엽이 본격적으로 깨어나는 시점이 있는데 중년의 사춘기인 사추 기와 관련이 있어요. 인간은 7년에 한 번씩 의식의 진동이 있고, 여섯 번째면 7*6=42세입니다. 그래서 이 시점이 가장 충동적이 되고 위험한 시기일 수 있습니다. 잠자고 있던 전두엽이 깨어나면 중년기의 방황도 시작되기 때문이죠. 짐작하시겠지만 그 기간은 7년; 혹은 그 이전; 


하지만 오히려 그다음은 자유로워지는 기회가 됩니다. 그것은 암수술을 받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암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구뇌의 생존 이유는 에고입니다. 그 에고는 본질의 내가 아닙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대전환기에 내가 해야 될 입니다. 부모도, 남편도 나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어요. 


저는 수많은 세월을 구뇌의 조종을 받고 그것이 옳다 믿으며 살았어요. 하지만 의식의 혁명, 전두엽이 깨어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알아차리고 대처를 잘한 것도 네버 네버 네버 아닙니다. 대가를 치렀어요. 그것은 프롤로그에서 서술했지요; 42세부터 시작하던 난리가 7년을 지속하다가, 49세를 기점으로 해방되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아주 가끔씩 헷갈리면 지랄 지랄을 하고, 정신이 들면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미안해서 반대로 남편이 그렇게 행동할 때는 제가 또 받아주게 되더라고요. 아는 일이니까요. 모두 상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사과를 먹고 싶어서 상대를 선택한 거지요. 상대는 사과나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 것이지, 속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밤나무라면 밤이 열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는 상처가 해결될 때까지 사과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미워하고 밀어내고 내 상처를 움켜쥐면서 세상에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는 신념을 키워나가게 되지요. 그러니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대로, 밤나무는 밤나무대로 인정해줘야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모쪼록 전두엽의 혁명기를 맞이하고 계신 모든 분들은 절망적이지 않으니 모두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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