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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nt Kim Feb 20. 2024

[유학일기] 첫날. 매트리스가 사라졌다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미국 생활 속도와 변수들. 

내 뜻대로 '빨리' 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해결은 되더라


미국 유학생활 4년 차,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받아 들기까지 어떨 때는 1분, 어떨 때는 15분 걸리는 들쭉 날쭉의 일처리 속도와 개념은 여전히, 가끔, 나를 울컥할 때가 있다. 


신입으로 보이는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천천히 주문을 받고 있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10명 이상, 근데 커피머신 뒤 블랙 에이프런을 두른 네댓 명의 선임들은 빈 우유통을 주고받으며 농담을 치고 있다. '한국이었음 이거... 기다리는 사람 사이에 폭동 각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꾹 참는 일은 '랜덤 하게 다반사.'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한국처럼 주문하자마자 5분 안에 뜨끈한 국밥이나 커피가 내 앞으로 오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그렇다. 기다리다 보면 미적지근한 라테가 나오긴 한다. 정신승리와 적응의 힘이다. 


돌이켜보면, 혼자 처음 미국생활에 정착하면서 그 '상대적 시간 개념'과 '예기치 못한 변수'에 대해 적응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새로오는 유학생들을 가끔 돕다보면, 그냥 오면 되는데, 왜 저렇게 불안해하지, 모든 걸 준비해도 분명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길 텐데 할 때가 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도와주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오면 그렇게 뜻대로는 안될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불현듯 내가 이곳에 온 첫날을 떠올려봤다. 2020년 코비드가 한창인 시기고, 학생회도 없었고 학교도 나름(?) 셧다운 상태라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박사과정에 한국인 선배가 있었고, 마침 친구 집 방 하나가 남으니 거기서 당분간 있다가 집을 구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물론, 나는 "코로나도 있고 한국에서 가는 거라 그냥 집 구해서 바로 들어갈게요"하고 에둘러 거절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부담이고 in person 만남 자체가 부재한 시기였기에. 


인터넷으로 집을 구하고, 도착하는 날에 맞춰 인터넷도 개통해 뒀다. 전기나 수도 등등도 리징오피스와 이야기해서 잘 처리해 두고. 잠도 편하게 자야 하니, 침대 매트리스도 당일에 도착하도록 주문해 뒀다. 핸드폰도, 렌터카 예약도 완벽. 


도착 첫날 당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것도 빨리 내렸다) 시큐리티도 무난하게 통과, 처음 해보는 짐 트랜스퍼도 스무스하게 하고, 아주 성공적으로 최종목적지까지 비행기를 잘 타고 왔다. 학교 최종 결정 전에 한 번 와봤기 때문에 어리바리하지 않고 잘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혼자라는 무언의 막연함과 은근한 두려움은 배경으로 잔잔히 깔려있었지만. 


내려서 트렁크 3개를 끌고 렌터카를 빌리려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에 서있는 분이 총을 차고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남부, '보이게' 건 캐리온이 가능한 곳이다. 뭐 예상은 했으나, 첫날 공항 주차장에서부터 목격하니 살짝 다리가 후들. 물론 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총 맞을까 봐... (작은 마음...) 


그래도 나름 예전에 미국에 살면서 운전은 해봤으니, 차를 몰고 곧장 집으로 가본다. 날씨도 마음도 설렘 한가득이다. 

Exit 이름까지 West Hills,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랄까.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체크인을 마치고 집에 드디어 입주해 본다. 드디어 아늑한(?) 나의 집. 몇 년 동안 살 나의 집이다. 이렇게 첫 시작은 트렁크 세 개. 아직 매트리스는 도착을 안 해서 확인해 보니, 배송하러 나왔단다. 일단 짐을 던져두고 마스크를 쓰고 코스트코에 장을 보기로 한다. 

첫 시작은 이렇게 트렁크 세 개. 


장을 보고 들어오는데, 층계 아래 분명 내가 주문한 매트리스 브랜드인 것 같은데, 누가 박스를 버려뒀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싶어서 들어가는데, 문 앞에는 쪽지 하나가 있다. 


물론,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가 어렵다. "package it... " 어쩌고 쓰여있는 것 같은데....


황당하게 놓여진 쪽지와, 박스. 그 흔적.


혹시 몰라 바깥으로 뛰어 나가 박스를 확인해 보니... 내 이름이 딱 새겨져 있는 것 아닌가. 

음. 알맹이는 어디에? 


다리힘이 또 풀렸다. 뭐지, 첫날부터 그 유명한 미국 택배도둑을 당한 건가... 바깥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시기라 당장 도움 구할 사람들도 없고, 쩔쩔 매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지나가며 "뭐 도와줄까?"라고 하길래 쪽지를 보여주며, 이런 메시지를 받았고 내가 매트리스를 도둑맞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웃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가 생각나는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며 나를 데리고 바로 '옆집' 문을 두드렸다. 5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은 여자의 물음에 자기는 모른다고 하다 추궁을 하니 자기가 '보관'하고 있었다며 말을 바꾸며, 자신의 안방에 들어와서 가져가라는 아주 신기한 논리를 펼쳤다. 


그렇다. 내 옆집이 도둑이었던 것. 소동이 끝나고 나를 도왔던 이웃이 다시 내 아파트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었더니 '저 사람 조심 하라'라고 '혹시 도움 요청하면 윗집이니 올라오라'라고 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신고하면 혹시 옆집인데 뭔가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지, 리징 오피스에 얘기해서 내 렌트비를 환불받을 수 있을지, 유닛을 옮겨야 하는지... 별 생각을 다했고, 혹시 모를 이사(?)에  새로 산 매트리스는 돌돌 말린 그대로 두었다. 


대신, 월마트에서 급하게 산 에어매트리스를 바닥에 깔았다. 


그렇다. 첫날은 예상하지도 못한 싸구려 에어 매트리스에서 멍한 채 잠들었다. 


아마 첫날부터 나의 컨트롤을 잃었던, 어쩌면 빨리 이곳의 속도와 상식에 적응할 수 있게 한 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에서처럼 뭔가 빠르게, 내가 마음먹은 대로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상을 벗어난 일이 발생할 때도 그 대처 자체도 나의 상식을 뛰어넘기도 한다. 


일련의 이런 상대적 속도와 예측 불가능의 순간은 유학생활 혹은 미국생활의 디폴트값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으면서도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어려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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