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고민하지마~ Girl~
'어떤 회사를 가야하지?', '이 커리어를 이어가야 할까? 바꿔야 할까?', 관둬 말아 관두면 뭐를 할 것이며 이대로 다니자니 죽겠다 싶고. 커리어를 두고 하는 고민은 회사를 아무리 다녀도 끝이 없다. 커리어에 관련해서 고민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늘 지표로 삼는 사람이 하나 있는 데 그건 바로 은행원으로 재직하다가 당시 동료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일군 후 퇴사, 전업주부로 10년간 지내다가 학원 창업, 사업체를 운영하며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사 졸업, 같은 전공으로 석사 졸업, 곧 박사 학위 수여를 앞두고 있는 60년 출생 쥐띠, 60대 중반의 우리 엄마 문 여사님이다.
일단 나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자면 시작은 평범하게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우신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진 않았고... 우리 아빠는 동네에 소문이 짜하게 난 자식 바보였으며 (당시에 자식에 대한 이런 애정을 마구 마구 표출하는 다정한 아버지 상이 드물었기에 시골 마을에서 더욱 화제가 된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아주 소녀스러우면서도 똑부러지는 말하자면 매우 은은한 매끄럽고 소음없는 불도저같은 분이셨다.
(짤로 치자면 왼쪽. 맑고 곱고 차분하게 절대 물러서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 사이에서 어쩌면 지역의 특징일 지 모르는 느긋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는 오냐오냐하며 마구잡이로 즐겁게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엄마가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느낌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엄마가 메이크업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엄마의 화장한 얼굴을 처음 본 내가 엄마를 낯가렸던 기억이 난다 ㅋㅋㅋ "분명 엄만데 엄마가 아니야!" 같은 멘트를 했던 것 같다. 화장한 엄마가 너무 곱고 예뻐서 갓 열살이 된 초등학생은 자신의 기분을 자세히는 설명 못하고 혼자서 쑥쓰러워했던 거 같다.
화장을 한 엄마가 낯설고 예뻐서 쑥스러웠던 그 날은 엄마가 10년의 전업 주부를 청산하기로 결심하고 학원을 창업한 날이었다. 그렇게 속셈 학원을 운영하던 엄마는 곧 컴퓨터 학원을 추가했고 곧 이어 피아노 학원까지 인수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과 학생들의 어린 동생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된 엄마는 당시 보기 드물게 피아노 학원 한 구석에 피아노를 배우는 수강생들의 어린 동생들도 놀 수 있는 볼 풀장이나 넘어져도 안전한 놀이 공간, 장난감 등을 함께 구비해서 수강생의 어린 남매나 형제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고등학생부터 어린 아기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6년 간 경험한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쯤 수능을 쳐서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엄마는 왕언니로 대학교를 다니셨고 대학교 수료 이후에 어린이집을 창업해서 원장이 되었다. 다시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엄마는 석사, 내가 지금 직장인 1N년차인 지금은 박사 학위를 위해 마지막 과정을 밟고 계신다. 생업인 사업체를 함께 운영하며 이어간 학업의 길이었기에 속도가 다른 사람들만큼은 빠르지 않았어도 언제나 학문과 실무 사이의 연결고리를 고민하고 적용하려고 노력하며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이 머릿 속에 늘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중학교, 고등학교 때 엄마한테 다른 애들은 늘 듣는다는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 번 안 듣고 자랐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잔소리할 시간에 자신이 수능 문제집의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야 했고, 나에게 수능 공부하라고 말할 시간에 자신의 과제 제출을 위해 밤잠을 줄여야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온 엄마가 책 피고 공부하는 데 옆에서 자식이 팽팽 놀긴 매우 어렵다. 내가 그닥 뛰어난 모범생 성정이 아니었음에도 무탈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건 옆에서 늘 성실히 다음을 준비하던 엄마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 때야 주변 어른들이 '너네 엄마 대단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 지 전혀 몰랐는데 첫 회사를 입사하고 직장인이 된 그 해, 나는 맨날 전화를 걸어서 엄마에게 그것이 가능했냐고를 물어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퇴근하고 무언가를 한다...? 그걸 계속한다...? 그런데 심지어 자식들 마저 있다니...? 그 상태에서 공부를....?' 엄마가 존경스러운 걸 넘어 미스테리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른 것.
그리고 사회 초년생으로 다닌 첫 회사를 겨우 1년을 넘기고 '어디로 가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진짜 도저히 아니다' 싶을 때 엄마에게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된다. "엄마는 첫 회사를 무슨 기준으로 선택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당시 상황 상 오빠가 하고 계시던 농업을 돕게 되었는 데 다른 사람이 하루면 다 메는 밭을 엄마는 하루 종일 해도 2고랑 정도만 멜 수 있었다고 한다. 꼼꼼하고 빈틈없는 일처리를 하는 엄마의 성격 상 벌어진 일인데, 엄마가 만진 고랑은 장마가 지나도 어디였는 지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잡초가 나지 않았지만 농업과는 맞지 않는 특성이 있던 것. 엄마는 '내가 뽑느니 잘 뽑는 사람을 돈 주고 사서 쓰는 게 낫겠다.'라는 빠른 상황 판단을 기반으로 당시 상고를 졸업했기에 갖고 있던 지식과 자격 요건 등을 고려해서 은행에 지원해서 취직하게 되었다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뚜렷한 엄마를 생각하였을 때도 늘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엄마의 성격을 생각하였을 때도 군더더기 없이 맞아 떨어지는 선택의 기준이었다.
현명한 선택 기준을 듣고 자식인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일단 빠르게 퇴사했다. 현명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빨랐죠?)
우직하게 유아 교육에 큰 뜻을 세우고 나아가는 엄마와 다르게 자식의 방황은 계속됐는 데, 엄마에게 세번째 질문을 던지게 된 시기는 정말 이렇게 한치 앞이 안 보일 수가 있나 싶게 막막하기만 했던 두 번째 회사 퇴사 이후였다. 너무 재밌고 즐겁게 잘 그리고 오래 다니던 스토리 페스티벌 회사를 여러 가지 사정으로 퇴사하게 되면서 찾아온 방황은 끝없이 아득하고 깊었고 캄캄했다. 처음으로 좋아하고 어쩌면 잘하기까지 한다고 생각한 일은 그만 뒀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분야를 찾아보자니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할 지도 모르겠는 시기였다. "엄마, 그 때 10년 간 집에만 있다가 학원 시작했잖아. 기존에 다니던 은행도 아니고 필드도 다른 데 어떻게 학원을 창업할 생각을 했어?" 엄마가 답하길 어느 날 초등학생인 내가 등교를 하고 있어서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가을이라 은행나무가 온통 노랗게 물들어서 길이며 나무며 다 노랗더란다. 애 낳은 이후 너무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서 '가을이구나~' 하고 생각해 본 적이 10년 만에 처음이라는 걸 깨닫고는 너무 놀랍고 서러워서 그 날 아침에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한참 울고난 엄마는 '내가 10년 간 뭘 했을까?' 하고 정리해 보니 딱 2가지 였는 데 하나는 요리 다른 하나는 애 키우기였다. 그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창업 업종은 식당 아니면 학원으로 좁혀지는 데 우리 아빠는 동네에서 잔치가 열리면 요리사로 모셔갈 정도의 손맛있는 할머니 아래서 자란 탓에 정말 미식가라(요리도 정말 잘함 우리집 백종원), 갓 시집와 요리가 서툴고 크게 맛을 상관하지 않는 무던한 스타일의 엄마 요리가 결혼 초기에는 그닥 입맛에 맞지 않았던 듯 하다. 요리는 먹는 사람의 반응을 보았을 때 큰 특장점이 아닌 것 같으니 제외하고 보니 남은 게 육아였다고 한다. 요리와 달리 '애를 잘못 키웠다'거나 '애가 간이 짜다/싱겁다(?)', '애가 덜 익었다(?)' 등의 피드백은 10년 간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애 키우는 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 학원을 창업했다고.
지난한 회사 생활 중에 극한 위기가 닥쳐올 때 전래동화 속 요술 주머니를 던지듯 엄마에게 물어보곤 했던 3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머리가 어지러울 때마다 반짝 불이 켜지듯이 혼탁한 머릿 속을 말끔히 정리해 주곤 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고 지금 자신이 하는 업무에서 항상 최고를 갱신하며 나아가는 엄마를 보면 '천직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쌓인 경험과 연륜과 지식을 활용해 나날히 프로페셔널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난다. 자신의 일에 깊이 몰입해 있는 엄마를 보면 즐기는 사람은 못 당한다는 말이 뼛 속 깊이에서부터 이해가 된다.
커리어 앞에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요즘,
아직 못 찾은 것만 같은 내 천직을 위해
엄마의 3가지 답변을 다시 꺼내 보는 밤이다.
나는 얼만큼 다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잘할 수 있는 지,
'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무엇을 '지속'해 왔는 지.
자신이 사랑하는 길을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로 끊임없이 걸어가는 우리 문여사님처럼,
나도 언젠가 나만의 환한 답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