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름 | 런던맑음
어느새 이곳에 온 지 한 달하고도 10일.
템즈강을 따라 달리는 조깅에 익숙해졌고, 혼자 해 먹는 음식이 맛있어졌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먼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여전히 즐거운 나날들.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모습이 흡족하면서도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혼자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위태로운, 외로운 행복.
둘러보면 내 주위엔 오래 두고 사귄 벗들이 많아서, 어쩌다 친해졌는지 이유 같은 건 진작 까먹은 지 오래다. 이제는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눈빛만 마주쳐도 통하는 사이랄까? 사실 너무 친하고 익숙해지니 안 좋은 점도 있긴 하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듯, 친구란 존재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았다. 공기가 당연하듯 친구도 당연한 것처럼. 미안하다 친구들아
겪어봐야 알게 된다고, 이렇게 한국을 떠나 아는 이 없는 타지에서 혼자 살아보니 이제야 알겠다. 그 당연했던 친구들이 얼마나 안 당연한 건지. 연락하면 받아주고, 별 일 없어도 만나주고, 별 거 아니어도 웃어주는 게 뭐 별 거냐 싶지만... 알고 보니 진짜 별 거더라. 정말 놀라운 건, 내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해준다는 거다. 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족도 쉽지 않은 일일텐데 말이다. 정말 친구란 건 대단한 존재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요새 매일 밤마다 TV를 보며 화이트와인 한 잔씩 맥주는 배불러서 홀짝거리는데, <빅뱅 이론>을 보며 혼자 낄낄거리다가도 불쑥 외로움이 엄습하곤 한다.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라도 옆에서 맞장구쳐주던 녀석들이 없으니 은근히 허전하고 그리웠나보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와인잔에 하나 둘 보고픈 얼굴들이 맺혔다 사라진다. 그닥 잘생긴 친구들은 없고 다들 못났어도 날 향해 웃어주던 녀석들, 그 썩은 미소가 그리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더군다나 그 썩소가 그리워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지.
'친구야 새로 사귀면 되잖아'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그 방법을 도대체 모르겠다. 내가 나이를 먹은 건지, 새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오랜만인지, 아님 런던이 한국이랑 달라선지는 몰라도 친구를 사귀기가 영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나이와 세대를 넘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친구라니... 이것 참 난감할 뿐이다. 영어를 못해선가, 눈빛은커녕 손짓 발짓을 해도 어긋나는 건 왜일까? 여기 한 달이 넘도록 있었는데 아직도 맘이 통하는 친구 하나 없이 계속 혼자다.
그렇다고 이렇게 넋두리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어느 여행에세이에선가 이병률이었던가 김동영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진 않지만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으면 뭐든 2개를 사서 하나를 주고 같이 나누면 된다고 했던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내 것만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생각해서 하나 더 사는 마음 씀씀이다. 이게 바로 친구를 사귀는 치트키가 아닐까 싶다.
콩 한쪽도 나눠먹으라고 엄마가 그랬지. 사실은 무척 쉬운 건데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두 개를 사서 하나를 준다. 내일은 학교 카페에서 커피부터 두 잔 시켜놓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