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벤 Nov 27. 2015

#4. 눈 오는 날

첫 눈이 내린다.

부산에 있었다면 볼 수 없었을 눈을

이렇게도 빨리 맞게 되다니...


26년을 부산에서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눈 오는 날'이란, 많이 신기하고, 호들갑으로 맞이해야 하는,  온종일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날씨이다. 물론 '첫 눈'은 내가 부산 태생이 아니었더라도, 어딘지 모를 설렘이 있는 단어였겠지만, 어쨌든 오늘처럼 내가 '눈 오는  날'을 심하게 반기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자주 오지 않으니까.'


못 본 것 일수도 있지만,  '첫 눈' 이 ' 마지막 눈' 이 되던 해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눈 오는 날은 왠지 더 특별함과 애틋함이 생긴다. 양 팔을 높이 치켜들고 반갑게 인사를 해줘야 할 것만 같달까.


아무튼 올해는 운이 참 좋나 보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서울에서 첫 눈을 맞았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동생집에서 3개월간 신세를 지며,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길 요량으로, 2주 전에 올라온 것이 첫 눈을 보는 큰 행운으로 이어진 것이다. 럭키!


쌓이는 눈은 아니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최대한 즐겨보려 했다. 그런데 어찌나 춥던지, 눈 오는 날의 서울의 공기는 의외로 차가웠다. 눈 내린 다음날, 하얗게 쌓인 눈 위로  내리쬐는 햇볕의 포근한 인상이 더 익숙했던 나는 내일의 기온은 따뜻할까? 더 추워질까? 공기의 온도를 가늠해보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방에 들어와, 열린 창 밖의 눈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불현듯 비올 때도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이 공허함은 어디서부터 출발된 것일까.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마냥, 외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첫 눈이라 그런 걸까. 그도 어디선가 내리는 이 눈을 보고 있겠지? 잘 지내고 있을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스치다가 이런 씁쓸, 또는 쓸쓸한 감정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조용히 응시했다.


'괜찮아, 자주 오지 않는 눈처럼, 이 감정 또한 네게 매번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이 순간의 느낌을 즐겨.'


부산여자인 내게 조금은 특별한 날씨, '눈'. 올해의 첫 눈은 어쩐지 조금은 차갑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 반가운 손님, 눈 오는 날이다.


[사진출처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스틸 컷]
매거진의 이전글 #3. 지금 이 순간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