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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 Jan 13. 2017

#11. 어느 딸기잼 냄새로부터

역 앞의 작은 빵집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오랫동안 장인의 손길이 닿았을 것 같은 허름한 빵집에서 딸기잼을 듬뿍 바른듯한 향긋한 빵 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익숙하다. 어디서 맡아본 냄새였지.
이 냄새가 나의 어떤 기억과 연결된 것인지,

정확히 그 정체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따뜻하고 행복한 냄새다. 아홉 살 꼬마 아이가 하교하면서 어디선가 맡았던 냄새. 아주 익숙한 냄새.

가게 앞에서 한참을 멈춰, 기억을 더듬어 보려 했는데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생뚱맞게 어릴 적 엄마랑 함께 자주 갔던 미용실 앞, 언덕만이 여러 번 떠오를 뿐이다.


이 장면들이 딸기잼과 무슨 상관이 있었던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기억들이 딸기잼 냄새가 나는 내내 계속 함께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냄새의 정확한 시초는 끝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그 냄새가 주는 따뜻함,

그리고 90년대 나의 유년기가 떠올라서
괜스레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여전히 그 냄새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고,
개운하지 못한 것들이 마음 한편에 남아있지만
잊고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소환된 것만으로도

길 위의 나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덕분에 포근한 오후를 선물 받은 기분.

잘은 모르겠지만 딸기잼 냄새로 인해  떠오르는

소소한 이 기억들이 나의 어린 시절 전반에 풍겼던 향기 었나 보다. 이런 냄새를 맡으면서, 저런 풍경들을 보며 자랐었나 보다. 엄마와 함께 갔던 미용실, 하굣길, 언덕길, 계단... 같은 것들.


어릴 적 냄새가 내 기억과는 무관한 딸기잼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평범한 딸기잼 향기에서는 나지 않았던, 유니크한 향기였던 걸 보면, 분명 그 집 딸기잼에서만 풍겨오는 냄새가 아니라, 그 날의 날씨, 여러 종류의 빵, 허름하지만 정겨운 가게의 냄새가 뒤섞여서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합이 만들어낸 그 날의 결과물이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냄새와 우연히 맞닿은 것일 테고.


그리운 냄새.
언제 또다시 맡을 수 있을까.

잠깐이지만 따뜻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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