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일종의 비료공장이다. 당시엔 합성비료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천연비료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홋카이도가 너무 추워서 그 비료를 만들 수 가 없는 것이다. 썩지를 않으니까. 그래서 이 주택이 만들어졌다.
홋카이도 개척민들은 물고기를 비료로 쓴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물고기를 비료로 쓰는 것이다. 다른 건 다 부족해도 물고기는 넘쳐났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1919년에 이곳이 지어졌다. 물론 잡은 물고기를 식량으로도 썼지만 그보다는 농작물 생산을 위한 비료를 만드는 것이 주 업무였다. 이를 위해 일본 각지에서 건장한 남성들이 가족을 본토에 남겨두고 일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홋카이도로 몰려왔다.
식사는 이렇게 차려졌다. 다만 이렇게 화롯불 주위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주인인 ‘아오야마 도메키치(青山留吉)’와 핵심간부들 뿐 그 외에 짬이 안되는(?) 일반인들은 불과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가혹한 홋카이도의 겨울, 꽤 추웠을 거라고 짐작된다.
이들의 식사 준비는 유일한 여성 세명이 했다. 문제는 이곳이 건장한 어부들의 숙식이 이뤄지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 여성들은 어디서 생활을 한 것일까? 출퇴근? 남자들도 가정을 두고 오는 판에 여성들이?
정답은 다락방이다.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여성들은 다락방에 있는 침소에 오른 후 사다리를 끌어서 치웠다고 한다. 애인과 부인을 본토에 놔두고 일하기 위해 넘어온 건장한 남성들의 흑심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50여개에 달하는 건물 중 한 곳에서 장장 한시간 동안 홋카이도 개척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이게 홋카이도에 대해 사전정보가 없던 내가 지식을 얻은 배경이다.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넘쳐나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방대한 이야기였다. 각 건물의 상호, 명칭, 전화번호, 소유주는 모두 실존했던 것들이며 그 건물의 소품에도 당시 생활하면서 실제로 쓴 것이 많이 활용되었다. 물론 일부 재현이 안된 곳은 출입을 막아 놓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내용이 참 충실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런 박물관, 굉장히 드물다. 일본에도 드물며 한국에선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박물관인 ‘한국민속촌’은 당시의 풍취를 느낄 수 있도록 콘텐츠를 창조한 곳이다. 가뜩이나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기록의 부족, 짧은 기록의 역사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의 디테일을 담은 역사 테마파크가 세워질 수 있을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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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