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지 않는 마음
소수의 인원을 먼저 뽑는 논술 우선선발 조건을 맞췄지만 K대에서 떨어지게 됐다. 네이버에서 ‘논술’로 검색해서 클릭한 곳에 전화해서 아사모사 논술을 준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논술 선생님의 실력은 출중했다.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에 다녔던 기자 출신이다. 하지만 K대는 마지막 문항이 수리 논술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제대로 준비가 안 됐다. 차라리 대성학원이나 종로학원처럼 대입 논술을 제대로 분석하고 가르치는 곳에서 배웠다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내신 전형으로 뽑는 학생부 교과 전형에서 H대와 C대를 합격했다. 결과적으로 최저등급 2등급 2개만 맞추면 됐다. 입시를 끝마치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내신도 수능도 다 할 거였으면 차라리 수능만 제대로 파는 학교를 가볼걸. 결과론적으로 입시 전략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입시는 끝이났다.
처음에는 좀 허무했다. 수능에서 만족할만한 점수를 받았지만 어쨌든 K대에 가지 못했으니까. 다시 입학한 대학 생활 초기에는 그런 게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다. 대학 친구들과 친해지고 학교를 잘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다가 PD로 일한지도 8년째,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쉬움과 후회라는 감정은 강물 아래 모래처럼 서서히 가라앉았고 그 위의 부유물들이 나의 인생을 흐르게 됐다. 입시 전략이 어떻게 됐든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도망가지 않았다는 마음은 2, 30대 내내 나의 삶의 태도를 결정했다. 창창한 20대 시절이지만 잘 모르고 명확하지 않은 미래로 흔들릴 때가 많다. 바늘 구멍처럼 좁은 언론사 시험의 문턱도 그렇게 보였다. 그래도 도망가지 말자. 어디서든 PD를 해보자. 그렇게 지역MBC에서 PD 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지역에서 사는 건 27살 패기 넘치는 청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버티고 버텼다. 도망가지 않고 버티다 보니 4년을 일했다. 그 이후는 성장을 위한 선택으로 이직을 했다. 최소한 힘들어서, 괴로워서 도망가지는 않았다. 교양에서 예능으로 넘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차만 쌓였지 예능 편집을 못하던 나는 한 달치 짐을 싸들고와 숙직실에서 살았다. 그렇게 반년만에 예능 편집에 빠르게 스며들 수 있었다.
도망가지 않는 마음은 당장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다. 지금을 버틸 수 있다면 일을 지속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호동이 형이 잘 해서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게 대단해보여.”라고 나영석PD가 말했다. 살아남는 사람이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시작은 일단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수능에서 배웠다. 그걸로 이 시험의 의미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