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당일

절대로 도망가지 않겠다는 마음

by 서성우


30분 먼저 시험장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고등학교 3학년 현역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옹기종기 아는 아이들끼리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관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그동안 어떤 과정이 있었든 간에 이 시험에서 최선을 다해서 부딪히겠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도망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은 시간동안 간단하게 언어 지문을 읽었다. 시험 시작 시간이 돼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시험 안내를 위해 시험 감독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도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절대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어떤 문제든 오라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언어

시험의 시작인 언어,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초반에 말리는 경험을 한다. 나 역시 현역 때 완전히 미끄러지며 4등급을 받았다. 마음을 다시 차분히 하고 문제지를 받아들었다. 듣기 영역과 초반 앞 문제들을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비문학 초반 지문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그레고리력’ 지문이었다. 한 번 읽었는데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2문제였다. 이 지문에 발목을 잡히면 언어의 시작부터 말리는 거고 언어에 말리면 시험 전체가 흔들린다. 일단 그레고리력을 넘어가고 시간이 되면 다시 풀기로 했다. 다른 비문학 역시 까다로웠지만 차근히 풀어나갔다. 문학까지 다 풀고 나서 다시 ‘그레고리력’ 지문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읽어도 풀리지가 않았다. 이 때쯤 되면 문제가 나의 지능을 초월하는 거라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다. 차분하게 문제를 찍고(?) 언어 시험을 종료했다.


언어는 확실히 어려웠다. 원래 언어를 안정적으로 2등급을 받지 못 했기 때문에 내가 이 정도 어려운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제발 2등급만 나오길 기도했다. 수학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뒤 자리에 앉아 페레로 로쉐 초콜릿을 먹었다. 언어를 치고 떨어졌던 당이 올라왔다. 차분히 눈을 감고 수리 시간을 기다렸다.


수리 나형

수리에서 미끄러지면 안 된다. 모의고사에서 조차 한 번도 2등급을 맞아본 적이 없었다. 더 정신을 차리고 수리 영역에 부딪혀야했다. 무조건 2등급을 받아야 했다.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수리의 어려운 문항은 20번대에 포진해있다. 킬러 문항을 맞춰야 2등급을 받을 수 있다. 24번 킬러 문항에 도착했다. 많이 본적이 있는 유형이었다. 반복되는 도형을 보고 극한 값을 구하는 문제였던 것 같다. 이 유형은 무조건 킬러 문항으로 나오던 시절이라 반복해서 해당 유형을 공부했다. 하지만 한 번에 풀리지 않았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일단 넘어갔다. 30번까지 다 풀고 돌아왔다. 차분히 다시 풀었다. 또 안 풀렸다. 3번째 다시 문제를 풀었다. 뭔가 풀리는 것 같았다. 확신은 없었지만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봤다. 뭔가 답이 나왔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어떤 숫자가 하나 나왔다. 주관식 문제였기 때문에 숫자를 적고 나서 수리 영역을 마무리했다.


점심 시간

수리 영역을 마무리하니 온 몸에 진이 빠졌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제 점심 시간이 됐다.


작년 수능이 떠올랐다. 도시락을 싸와 친구와 먹고 점심 시간 동안 복도에서 친구들이랑 언어와 수리를 잘 봤는지 얘기했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기로 다짐했다. 혼자 자리에 앉아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열었다. 밥을 먹으며 혼자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직 시험은 끝난 게 아니다. 여기서 집중력을 놓으면 안 된다. 혼자 밥을 먹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자리로 돌아왔다. 시험은 계속 되고 있다. 점심 시간에도 흐트러지면 안 됐다. 눈을 감고 차분히 외국어 시간을 기다렸다.


외국어

외국어는 현역에서도 2등급을 받은 과목이다. 하지만 언어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간 관리가 필요한 과목이고 한 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특성이 있다. 듣기 시간에 동시에 앞에 쉬운 문제를 풀어야하는 정신 없음도 동반한다. 그러면서 듣기에서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함도 내재한다. 그래서 외국어는 항상 불안한 과목이다.


듣기가 시작되고 앞 지문을 빠르게 풀었다. 다행히도 듣기를 무난히 넘기고 지문을 풀어나갔다. 크게 걸리는 문제는 없었다. 어려운 유형인 빈칸 완성과 문장 삽입에서 공을 많이 들이고 시험을 끝냈다. 순식간에 언수외 3과목이 끝이 났다. 이제 진짜 시험의 끝이 다 와 간다.


사회탐구

윤리

사회 탐구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이다. 평소 공부하며 그나마 쉬는 시간 같은 과목들이었다. 하지만 윤리는 어려웠다. 사상가를 맞추고 그의 사상을 맞추는 지문에서 헤깔린 부분이 있었다. 사회 탐구는 참 공들인 시간에 비해 시험 시간에 변수가 많이 생기곤 한다.


세계지리

도서관에서 세계지리를 공부할 때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유럽의 토양은 어떻고 기후는 어떻고, 가보지 못한 세계를 잠깐이나마 떠나는 기분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던 만큼 기분 좋게 풀었다. 그렇게 시험이 끝이 났다.


제2외국어

모든 시험이 끝이 났다. 제2외국어를 신청했지만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고 점수도 상관이 없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모든 긴장을 내려놨다. 제2외국어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생각했다. 대학을 자퇴하고 공부를 하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노력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난 한 달 간은 나 자신에게 당당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이번 시험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어떤 과목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생각이 가득했던 제2외국어 과목이 끝났다. 그렇게 2011학년도 수능 시험이 끝이 났다.


가채점

시험이 끝나고 곧장 친구와 집에 돌아왔다. 수험표 뒤에 적었던 가채점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가채점 결과에 따라 수시 최저등급을 맞추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가채점에서부터 수능 이후 논술을 공부하는 전략이 따라온다.


인터넷에 곧장 수능 정답지가 공개됐다. 우리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험표 뒷면을 펼치고 정답을 맞춰갔다.


언어를 채점했다. 어려웠던 그레고리력 문제에서 결국 많이 틀렸다. 어설프게 찍은 게 다 틀렸던 것이다. 나머지 비문학 문제에서도 조금 더 틀렸다. 언어 총 5개가 틀렸다. 89점, 기대 이상이었다. 모의고사 때보다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등급표를 확인해봤다. 89점의 등급을 봤다. 2등급이 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2등급이었다. 언어에서 2등급이 나와주면 수리와 외국에서 하나만 더 2등급이 나와주면 된다. 그러면 목표인 최저등급 2등급 2개를 맞출 수 있다.


수리 나형을 채점했다. 온 신경은 킬러문항에 집중돼 있었다. 24번에 있는 킬러문항까지 정신없이 채점을 했다. 과연 머리를 싸맸던 킬러 문항을 맞췄을까. 24번 주관식 정답을 봤다. 내가 적은 숫자와 똑같았다. 킬러 문항을 맞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끝까지 파고들었던 킬러문항을 맞았다니. 지난 한 달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풀었던 보상같았다.


킬러 문항을 넘어가니 정신이 차려졌다. 채점을 다했고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빨간색으로 빗장을 그어놓은 문제가 2문제밖에 없었다. 92점이었다. 수리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점수였다. 모의고사에서 조차 단 한 번도 82~3점 이상 맞은 적이 없다. 등급표를 봤다. 80점 중반 이상부터 1등급이었다. 수리에서 1등급을 받았다. 2등급 조차 받아본 적 없는 내가 1등급을 받았다. 말도 안됐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계속해서 채점을 해봤지만 점수는 그대로였다. 정말 1등급이었다. 너무 기뻤다. 방을 방방 뛰었다. 2등급 2개를 벌써 달성했다.


수리에서 얻은 성취를 이어 외국어를 채점했다.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딱 1개를 틀렸다. 역시 1등급이었다. 윤리는 만점이었다. 좋아했던 세계지리에선 3개를 틀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모든 과목에서 받아본적이 없는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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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생각도 잊은 채 담배를 꺼냈다. 믿을 수 없는 점수에 모든 이성이 마비됐다. 그때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조심스레 방문으로 다가왔다. 조금밖에 못 자서 혹시 수능을 망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셨을 거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나는 방문 앞에 서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잘 봤어! 언어랑 세계지리 빼고 다 1등급이야!”

컴퓨터 방 문 앞에서 엄마와 안고 한참을 뛰었다. 담배 냄새가 나는 방이었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반전을 맞이한 점수 앞에서 모두 즐거웠을 뿐이었다. 스무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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