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하루 전 수험표를 받기 위해 시험을 치는 학교에 갔다. 수능을 보는 곳은 졸업한 모교 고등학교라 모든 것이 익숙했다. 수험표를 받고 배정된 고사실을 확인했다. 2학년 때 쓰던 2층에 있는 교실이었다. 모교에 왔다고 추억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내일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벗어나 다시 도서관에 갔다. 수능 하루 전에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휴식을 취하곤 한다. 나는 한 달 전에서야 몰입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비록 하루 전날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해야겠다. 비율로 치면 이 하루는 꽤 큰 하루가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전 시간에 언어 모의고사를 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동안 시간을 아낀다고 거의 가지 못했던 인창동 청소년 수련관 식당에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 식당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능 하루 전이라도 수험생 외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은 같았다. 그 일상의 행렬 속에 우리도 끼어들어 밥을 담았다.
“내일 수능이지? 이거 먹고 잘 봐라~”
5,000원짜리 식사를 재수생이라고 500원을 거슬러 주시던 사장님은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찹쌀떡을 건네주셨다. 분홍색, 초록색, 흰색 형형색색의 꿀떡이었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응원에 당황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식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뭐라고…’
친구와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이 식당 덕분에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공부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받은 게 더 많은데 이렇게 마지막까지 받기만 하게 됐다. 밥을 먹으며 옆에 놓인 떡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대학을 자퇴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6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난 시간의 모든 순간은 괴로움에 가까웠겠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를 위한 고된 노력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달달한 꿀이 흐르는 꿀떡처럼.
점심을 먹고 감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과목의 모의고사를 수능 시간과 똑같이 풀었다. 5시가 돼 모든 시험을 풀고 마지막 정리를 했다. 내일을 위해 7시가 돼 도서관을 나왔다. 후회 없는 한 달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지막 하루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 마음 그대로 시험장을 향할 준비가 됐다.
집에 돌아와 내일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더우면 언제든 벗을 수 있게 겹겹이 옷을 준비했다. 아침에 집중을 위해 부스터 음료를 준비했다. 핫식스 따위는 없던 시절이라 레모나 2 봉지, 박카스, 포카리를 섞은 자체 에너지 음료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10시 30분에 침대에 누웠다.
생각이 많은 밤이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지나갔고 앞으로의 시간이 펼쳐졌다.
‘만약 내일 2등급 2개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동안의 노력과는 별개로 다가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2시가 지났다. 평소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던 음악을 들었다. 2시가 지났다. 잠이 오게 해 준다는 따듯한 우유를 마셨다. 4시가 지났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생각은 둘째고 잠이 오지 않는다는 상황 자체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덩달아 잠을 자지 못하고 있던 엄마가 방을 나왔다.
“성우야. 책상에 놓여있던 스케쥴러를 엄마가 봤는데 엄마는 성우가 잘 볼 거라는 믿음이 생기더라. 열심히 했으니까 잘할 거야. 마음 편하게 먹어.”
평소 엄마는 공부에 대해 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늦잠을 자든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대성리에 가서 1박 2일 동안 놀든 나에게 모든 결정을 맡겼다. 대신 매일 도서관에 가기 전에 밥값으로 만원 짜리 지폐 한 장만 주셨을 뿐이었다. 그런 엄마가 내 스케쥴러를 펼쳐보고 열심히 했다고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 나는 그 믿음에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 하고 싶었다.
새벽 5시, 형 옆에 누웠다. 사춘기 이후 같이 자본적이 없는 형 옆에 10여 년 만에 누웠다.
"불안하지? 맘 편하게 자. 잘 볼 거야"
당연하고도 따스한 가족들의 말에 파묻혀 새벽 5시에 잠에 들었다.
'띠리링'
6시 30분, 일어날 시간이었다. 겨우 1시간 반을 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있었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준비했던 에너지 부스터 음료를 먹었다. 포카리 500ml, 박카스 1병, 레모나 2봉지를 섞어 순식간에 들이켰다.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니, 수능을 앞두고 순식간에 각성이 됐다. 절대로 잠을 조금밖에 못 잔 것 때문에 핑계를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와 형, 아빠를 한 번씩 안았다. 잘 보고 오겠다고, 무조건 해내겠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자신은 있었다. 이제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도망가지 않기만 하면 됐다. 7시 10분 집을 나섰다. 수능을 들이받을 비장한 마음으로 시험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