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수능 한 달 전

by 서성우


최저등급이 없는 서울시립대 수시에서 탈락을 했다. 이제 수능에서 도망갈 길이 완전히 차단됐다. 9월 모의고사까지 최저등급 2등급 2개를 맞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작년 수능과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2010년 수능에서, 아니 고등학교 3년 내내 괴롭히던 수능 최저등급 2등급 2개라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수능이 한 달 남은 10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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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스퍼트

공부 계획표에 이전과 다른 표시를 썼다. ‘막판 스퍼트⭐️’ 그 전까지 연세대 논술, 시립대 논술 디데이가 써있던 칸이었다. 이제 수능까지 남은 날은 33일, 수시 논술을 향해 달려가던 마음처럼 수능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 가짐을 다르게 했다. 도서관이 여는 8시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원래 재수생인 우리의 출근 시간은 공식적으로 9시였다. 9시에 오려고 노력했지만 10시 30분, 11시 심지어 2시에 온 적도 있었다. 시작부터 각오를 다잡아야했다. 도서관이 여는 시간에 오는 게 지난 3년 동안 나를 괴롭혀온 수능 2등급의 벽을 넘는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에 항상 가던 한식 부페도 가지 않았다. 5000원인 한식 부페를 재수생이라며 500원 깎아주시던, 음식을 담고 갈 때면 항상 “맛있게 먹어라~”라고 해주던 사장님이 계시던 곳을 30일만 가지 않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걸어서 4분 거리지만 오며가며 10분이 사라지고 밥을 먹고 산책한답시고 사라지는 시간들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점심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라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는 시간이 돼야만 했다. 도서관 3층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영단어를 외웠다. 밥을 먹고는 양치만 하고 곧 바로 자리로 돌아와 공부를 했다. 같이 공부하는 종인이는 엉겁결에 같이 막판 스퍼트를 해야만 했다.


도서관은 10시에 끝이 난다. 10시가 되면 학교처럼 종이 울리면서 퇴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평소 우리는 그 방송을 자주 듣지는 못 했다. 9시가 넘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밖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10시에 종이 울리는 지도 모르고 공부를 했다. 도서관을 나와 빠르게 집에 가서 그 날에 계획했지만 다 하지 못 했던 공부를 마저하고 12시에 바로 잠을 잤다. 8시부터 12시까지 버리는 시간 거의 없이 하루 15~16시간을 공부했다. X표가 많던 계획표가 O로 가득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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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법

이 기간 동안은 철저히 모르는 것을 파고 들었다. 지난 5개월 동안 부족했던 개념 공부나 문제 풀이 등의 인터넷 강의는 충분히 들었다. 이제 내가 모르는 약점들을 공략해야했다. 30일 동안 수능 스케쥴대로 기출 문제를 풀었다. 수능을 위한 감을 잡는 연습이자 가장 중요한 기출 문제에서 모르는 부분을 알고 넘어가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기출 성적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르는 부분은 계속해서 틀렸고 취약한 유형은 여전히 두려웠다. 수능 스케쥴 이후 오후 5시부터는 취약한 부분을 공부했다. 국어의 과학 지문, 수학의 4점 짜리 킬러문항, 영어의 빈칸 완성, 순서 배열의 유형 등 2등급을 넘어서기 위해서 반드시 맞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수학의 킬러 문항은 5번 이상 풀었다. 답을 알 때까지 씨름했다. 한 문제를 1시간 동안 잡고 늘어졌다. 그걸 반복하니 비슷한 유형의 킬러문항을 마주해도 어느 정도 덤빌 정도가 됐다. 이처럼 모든 과목의 어려운 부분을 잡고 늘어졌다. 도망갈 곳이 없어진 나는 그동안 도망갔던 문제에서 도망가지 않고 부딪히게 됐다.


스무살 생에 가장 밀도가 높았던 가을이었다. 그렇게 수능 하루 전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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