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시작한 걸까

9월 모의고사

by 서성우

평가원에서 제출하는 9월 모의고사는 수능 전에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수능을 출제하는 평가원에서 내는 시험이라 수능과 가장 유사한 시험이고 출제 올해 수능 경향을 어느 정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9월 모의고사에서 성적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수능 성적이 정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수능에서 긴장한 나머지 9월 모의고사보다 못 보면 못 봤지 잘 보는 경우가 나오기 힘들다. 단 기간에 향상시키기 어려운 시험이기 때문이다.


수능 D-77

9월 모의고사를 봤다. 졸업한 학교에 재수생 9월 모의고사 신청을 해서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종인이와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공부는 잘 되고 있니. 반 1, 2등이 같이 재수를 하고 있어서 선생님이 마음이 무겁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아직 2달 조금 더 남았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고등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9월 모의고사에서 최저등급 2등급 2개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왜 다시 입시에 도전했을까. 고3 현역 때 수능 최저등급 2등급 2개를 맞추지 못한 게 아까워서? 아니면 고려대 논술전형에 수백대 일의 경쟁률 중에 그 ‘1’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아주 희박한 요행을 기대해서?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목표는 K대라는 것이 확실했는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어디에도 없었다. 9월이 지났는데도 2등급 2개가 안 나오고 있는 상황에 내가 K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복권 당첨급의 확률이었다. 그냥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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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모의고사가 끝나면 수시 접수 기간이 시작된다. 1주일 정도 기간동안 각 대학의 전형에 맞게 서류와 자기소개서 등을 제출해야한다. 수시 원서를 쓰기 위해 1주일을 소비했다. 1주일이 걸릴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지금보다 나은 대학을 가는 방법은 논술 전형과 높은 내신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결국 고3 때와 같은 입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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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all-in

그때 부터 나는 도서관에서 커다란 원고지를 들고 다니며 논술을 쓰는 사람이 됐다. 수능 서적은 펼치지도 않은 채 대학 논술 시험 일정에 맞춰 글을 쓰고 인터넷으로 첨삭을 받고 글을 고치고 또 글을 썼다. 10월 초 연세대 논술 시험을 보고 5일 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논술 시험을 봤다. 특히 서울시립대 수시 1차는 최저등급 없이 논술과 내신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대학이었다. 또 세무사가 되면 뭐가 좋다느니, 그런 희망적인 글들을 찾아다녔다. K대에 가고자 반수를 시작한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최저등급 안 맞추고 갈 수 있는 곳에 희망을 걸었다.


‘서울시립대 붙으면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지?’ 당시 다이어리에 이런 글을 썼다. 이 선택은 나의 욕구였나 부모의 욕구였나. 반수를 하라고 누가 등을 떠밀었는가. 타인의 욕망을 추구하며 나는 나의 욕망에서 도망갔다.


10월 초 서울시립대 논술 시험을 보고 나서부터 나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향해있었다. 합격을 하고 입학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미 마음은 도서관이 아니라 대학교에 입학해있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던 10월 중순, 합격자를 확인하라는 문자가 왔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친구와 함께 도서관 3층 컴퓨터 좌석으로 갔다. 컴퓨터 전원을 키고 도서관 이용 시간 1시간을 등록했다. 네이버에 들어가 ‘서울시립대 입학처’를 눌렀다.

‘이제 이 생활도 끝이다. 더 이상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부푼 기대를 안고 합격자 발표 탭을 눌렀다.


‘불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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