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가자

루틴한 생활이 시작되다

by 서성우

학원을 그만 두고 나오는 길에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3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진 종인이는 반에서 1, 2등을 오가던 친구였다. 종인이 역시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원하던 체육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쌩 재수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종인이의 말에 어떻게 공부하고 있나 보러 그 길로 종인이 집으로 갔다.


“이거 꿀잼이야”

종인이의 컴퓨터에는 인강 대신 깡패들이 치고 받는 ‘느와르’라는 게임이 켜져있었다.

“야 이런…ㅋㅋ 재수생이 뭐하는 거야”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친구에게 싸커킥을 날려줬다. 얘기를 들어보니 2월부터 5월인 지금까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서 부모님이 출근하시면 일어나서 게임을 하고 부모님이 오시면 다시 공부하는 척을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랑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자”

집에서 재수생인 척을 하던 친구를 밖으로 끌고나왔다. 장소는 인창도서관으로 정했다. 구리시 수택동에서 사는 나와 남양주 금곡동에 사는 종인이의 딱 중간이 지점이었다. 둘 다 집에서 버스로 25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 물리적으로도 집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충분했다.

인창도서관 사진.jpg
인창도서관 열람실.jpg


수능까지 남은 날은 170일, 종인이와 함께 인창도서관에서 독학 재수를 시작했다. 열람실은 지하 1층에 있었다. 축축한 지하의 냄새가 스며있는 열람실이 이제 우리의 공부 공간이다. 몇 년 동안 땅 아래에서 에너지를 모으는 매미 유충처럼 우리도 지하 열람실에서 그 언제를 위해 힘을 모아야한다.


이제 스스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공부를 해야했다. 과목별로 목표를 세웠다. 언어는 수능에서 4등급이 나왔기에 문학, 비문학 전반적으로 개념을 다시 잡기로 했다. 수학은 만년 3등급이었다. 개념은 어느 정도 잡혀있다고 생각해 고난이도를 풀 수 있는 수능형 사고력을 키워야했다. 수능 기출을 심도있게 분석하는 강의를 5번 반복하기로 했다. 외국어는 꾸준히 2등급, 더 상위권으로 치고가기 위해서는 역시 고난이도 문제를 맞춰야한다. 기출을 반복하며 어려웠던 문제를 파고들기로 했다. 간단해보여도 170일이라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파악하고 그것들만 제대로 공략하기로 했다.



IMG_6615.JPG



5월 29일

도서관이 문을 여는 아침 8시 집을 나섰다. 밥 값으로 엄마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종인이를 만났다. 사물함을 끊고 각자 공부할 문제집을 넣어뒀다. 오전 9시부터 점심 시간까지 딴짓하지 않고 공부했다. 점심 시간에는 엄마가 추천해준 인창동 청소년 수련관 식당에 갔다. 부페식으로 매일 다른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라 공부를 하며 음식에 질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식당에는 점심 시간을 맞아 근처 노인회관의 어르신들, 주변 직장인들로 인산이해를 이뤘다. 그만큼 음식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나왔다.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식판에 양껏 음식을 담고 주인 아저씨한테 계산을 하러 갔다.


해든마루 식당 음식 사진.jpg
해든 마루 요금표.jpg


“너희 몇 살이니?”

성인 5000원, 학생 4500원의 가격표가 있었다. 머뭇대던 우리는 말했다.

“저희 스무살인데 재수생이에요.”

아저씨는 “맛있게 먹어라~”라는 말과 함께 500원을 거슬러주셨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오후 6시까지 공부를 했다. 만원에서 남은 5,500원으로 김밥천국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또 다시 도서관이 닫을 시간인 10시까지 공부했다. 도서관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때의 충만함을 잊지 못한다. 밥먹는 시간을 빼고 11시간을 공부했다. 살면서 이렇게 공부를 밀도있게 해본 경험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부분을 찾아서 스스로 공부한다는 충만감이 밀려왔다. 이게 진짜 공부였다. 종인이도 도서관이 맞는 눈치였다. 집에서 게임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도서관이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6개월만 한다면 해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종인이와 내 마음 속에 조금씩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누구나 다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한 달 뒤에 뒤늦은 6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어제는 대학생 오늘은 재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