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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ludenshomo Aug 02. 2016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 후의 편안한 토닥거림 같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식 가족 드라마입니다.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같은 배우들부터 시작해 이야기의 구조도 일견 흡사해보이구요.

그렇다고 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동어반복을 하고 있느냐? 제 생각은 전혀 아니란 겁니다.

영화를 보기 전 주변인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모두 다 섞어놓은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러한 평가에도 또한 동의하기 힘듭니다.

이 영화는 분명 익숙한 배우들로 익숙해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 작품으로서의 특징과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아들의 양육비도 제 때 주지 못하는 '료타'.

할머니가 보고싶다는 아들 '싱고'와 함께 어머니의 집에 찾아갑니다.

전 처인 '쿄코'는 싱고를 데리러 집에 들르지만, 마침 찾아온 태풍 때문에 발이 묶이고 맙니다.

자신도 돈이 없어 누나에게 빌리는 처지이면서 어머니의 용돈을 주는 료타는 

재결합을 꿈꿔보지만 이미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는 쿄코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이러한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유쾌할 구석 없는 이야기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른들의 세계 속에선 가장 경쾌하고 유머가 풍부합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료타라는 인물도 참 흥미로운데 기본적으로 무능한데다

흥신소 일로 버는 조금의 돈까지 경륜으로 써버리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유품까지 노리는 형편없는 인물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 또한 료타입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번 돈을 경륜에 다 써버리는 모습,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지만 결국 그와 다를 것 없는 현재, 전 처를 잃고서야 후회하는 것까지. 

알면서도 늘 미끄러지고야 마는 삶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영화의 끝에서, 료타와 코쿄가 재결합했다면 영화의 감동은 훨씬 덜했을거에요.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료타와 그를 둘러싼 상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모습입니다.

거창한 말로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죠.

오히려 태풍이 지나가도, 되고 싶은 것이 되지 못 했더라도 삶은 계속된다며 

건네는 작은 위로, 토닥거림같은 영화이죠.

말하자면 감독이 작정하고 어깨 힘을 빼고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보는 사람들도 힘을 빼고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에 따라 여타의 다른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울림과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통찰은 덜한 편이지만, 우리 일상에 이런 영화도 분명 필요할테죠.


항상 배우들을 잘 기용하는 감독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가 훌륭합니다.

영화 곳곳에 배어있는 웃음의 진원지는 단연 키키 키린이라는 배우이죠.

언제 봐도 항상 놀랍습니다. 

저는 슬픔보다 웃음이, 분노보다 평상심이 연기하기에 더 어려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 속 연기들이 항상 좋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를 끝으로 당분간 가족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가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사려 깊게 연출해온 그이기에

한 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가족 드라마가 아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어서 보고싶은 마음도 있어요^^.

부디, 열일해주시길!




추천지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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