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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ludenshomo Aug 17. 2016

터널

<터널>이 우리 마음 속에 남기고자 했던 것은

※영화 결말이 포함돼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터널>은 올여름 포진된 한국영화 대작들 중 가장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처음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인데, 여러모로 기시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죠.

이야기의 얼개와 기본 설정은 창의적인 스릴러 <베리드>(로드리고 코르테스)를 떠올리게 하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재난 속에 갇힌 개인을 둘러싼 구조 논쟁은 당연히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본 <터널>은 예상과 달리 <베리드>와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정확히 비추고 있는 것 같지도 않구요.

물론 이것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기획된 작품이라는 것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보다는 영화가 갖고 있는 톤에 기인하고 있달까요.

사실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린 작품은 <마션>(리들리 스콧)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이정수'가 갖고 있는 낙천성이나 선함에서 '마크 와트니'가 연상되기도 했고,

혼자만 남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방식들을 고안하는 장면들도 그렇구요.


<마션>을 떠올렸다는 부분에서 이미 알아차리셨겠지만,

<터널>은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비해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립된 정수의 분위기와 터널 밖의 분위기가 대조될 때 항상 더 나아보이는 쪽은 전자입니다.

재난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심각함 속에서 넘치지 않는 적절한 유머를 버무리는 감각이 뛰어나지요.



그리고 그런 유머와 페이소스의 중심에는 '하정우'가 있습니다.

언제나 뛰어났지만, <터널>에서는 자신의 장기인 일상에 녹아있는 능청스러움을 맘껏 보여줍니다.

액션과 리액션에 모두 능통한 이 배우는 작은 디테일로 설명되지 않은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또 다른 생존자 '민아'의 어머님과 통화시 "안녕하세요. 기아 자동차 하도대리점..." 이라며 설명하는 장면),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합니다(자신의 자동차로 돌아와서 "아~ 집에 왔다").

물론 탱이가 케잌을 다 먹어버린걸 알았을 때처럼 작정하고 웃겨야 할 때에는 

유감 없이 코미디 연기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하정우만큼 꾸준히 연기를 하고, 

그 결과물도 훌륭하며, 티켓파워까지 갖춘 배우가 또 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왜 그가 현재 충무로에서 캐스팅 1순위 배우인지를 증명하는 연기입니다.


하정우뿐만 아니라 '오달수', '배두나', '김해숙' 등 각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오달수는 정말 하늘에서 한국 영화계를 위해 내려준 요정이 아닐까 싶어요.

오랜만에 한국 영화에서 만나는 배두나의 연기도 반갑더군요.

특히 누군가를 캐치프레이즈 한 것이 틀림 없는 김해숙이 분량에 비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마지막 퇴장하면서 "나? 왜?" 라고 어리둥절해 묻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터널>이 원작소설과 다르게 각색한 엔딩에 대해 많은 의견 차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구조장면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취한 해피엔딩은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구요.

이것은 영화 상의 개연성의 문제도 분명 있겠지만,

저에겐 현재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불신과도 연관 있게 다가옵니다.

저 또한 이정수란 인물이 구조되길 바랐던 한 명의 관객이지만

실제로 그가 구조되는 엔딩을 보면서는 '현실이라면 저렇지 않겠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으니까요.

어쩌면 이 영화가 우리 마음 속에 남기고자 했던 것이 이러한 질문과 그에 따른 고민일 수도 있겠지요.




추천지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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