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ludenshomo Sep 30. 2016

우리들

작은 낙관이 주는 커다란 감동

개봉 때 미처 챙겨보지 못해 이제야 봤지만,

<우리들>은 제게 올 상반기 최고의 한국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일전에 <곡성>을 본 후 같은 표현을 이미 썼지만 다시 본 후에는 생각이 바꼈습니다)

이 영화는 아름답고 따뜻하면서도 어느 순간 마음에 서늘함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가면 큰 감동과 함께 뭉클함을 선사하지요.

정말이지, (특히 한국 영화에 있어서) 흔치 않은 영화적 체험을 준달까요.


영화의 첫 장면.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가위바위보를 통해 팀을 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들의 대화소리를 통해 알 수 있을 뿐,

카메라는 계속해서 한 소녀의 얼굴만을 클로즈업해 보여줍니다. 

바로 우리의 주인공 '이선'입니다. 조바심과 기대감, 실망과 슬픔, 또 다시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소녀의 얼굴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감정들은 이후 이야기의 전개에 고스란히 녹아들지요.

그야말로 10대 소녀들의 관계와 그로 인한 복잡한 감정들을 이보다 잘 표현한 영화도 드물겁니다.


선과 '지아'가 처음 만나 방학동안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까지.

설레임과 행복, 그 우정의 소중함까지 모두 느껴지는 장면들을 보고있자면

보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그 좋은 감정들이 스며드는 것 같지요.

마치 불순물 없는 맑은 물을 쭉 들이킨 것 같은 기분마저 드니까요.

그러나 한 편으론, 둘의 가정환경의 명확한 대비에서 오는 불안감이 느껴지는것 또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둘의 관계에 미묘한 균열이 오는것도 지아가 선과 선의 엄마의 다정한 대화를 목격한 후이죠.

(지아는 그 후 선의 엄마가 만들어준 오이김밥은 먹지 않고, 옆에 놓여있는 과자를 집어 먹습니다.

또한 처음에 너무 덥지 않냐는 선의 물음에 괜찮다고 했던 것과 반대로 

"너네 집은 왜 이리 덥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하죠)


방학이 끝나고 둘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평소 선을 늘 무시했던 '보라'와 그 친구들이 지아와 한 무리를 이루게 되면서부터이죠.

이후의 전개는 마음이 아린 부분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한없이 맑고 착한 마음과 또 정반대의 마음을 여과없이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 모두가 겪었던 원색의 어린시절이겠지요.


어린이든, 어른이든 관계란 것의 복잡함과 불명확성은 같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절대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극 중 선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고민이 어디있냐"며 무시하지만,

아이들이라고해서 고민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니지요.

오히려 '친구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선이 겪고 있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선 또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신의 고민으로 여기는 것일테고요.


<우리들>은 말 그대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극 중 '윤'이 "그럼 언제 놀아?"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어른들이 더 느끼는게 많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들>의 엔딩이 정말 좋게 느껴졌습니다.

(만약 두 소녀가 서로 마주본채 환하게 웃거나 손이라도 잡았다면, 이만큼의 감동은 없었을거에요.)

정말 딱 이만큼의 낙관, 희망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거겠죠.




추천지수: ★★★★ (4)

매거진의 이전글 터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