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일으키는 파동
<너의 이름은.>은 일견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물처럼 시작합니다.
도쿄에 사는 소년과 시골에 사는 소녀의 몸이 뒤바뀐다는 설정을 가지고
극의 초반부터 빠른 전개로 재미를 줍니다. 적어도 중반부까지는요.
하지만 중반부의 어느 시점이 지나고부터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물론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긴 하지만요.
아이러니하게도 <너의 이름은.>이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와는 다른 감흥을 주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시종일관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몸부림 장면과
"소중한 사람, 잊어선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 이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대사까지,
자칫하면 우스꽝스러워지거나 시공간이 오그라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데 성공합니다.
인간이 망각을 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일일텐데 그것에 대항하는 그 노력이 참 눈물겹더군요.
'잊지 않겠다'라는 다짐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위로가 되는 시대이니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화 또한 듣던대로 정말 훌륭합니다.
특히 혜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장면은 놀라웠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의문점도 바로 이 감흥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받은 이 감동과 울림이 과연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내연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멋대로의 감상과 외부적 환경, 이것도 일종의 푼크툼이겠죠,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말이에요.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쉽게 답을 내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감독 스스로가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요.
그것뿐만 아니라 <너의 이름은.>은 그 자체로단점이 적지 않은 영화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나 감독이 창조한 세계관이 너무 단순한 것이 가장 큰 흠이에요.
남녀가 서로의 신체가 바뀐다는 기본 설정을 갖고 있음에도 감독의 젠더에 대한 시선이 너무 평면적입니다.
남성인 '타키'를 표현할 땐 색은 무조건 파랑, 여성인 '미츠하'를 표현할 땐 무조건 분홍색을 사용했죠.
물론 이렇게해서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가능할진 모르나,
(그러나 이것 또한 관객이 갖고 있는 젠더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죠)
제게는 그만큼 게으르고 구시대적인 창작으로 보입니다.
노골적으로 미츠하의 신체를 관음하는 장면도 불필요하게 많아보이구요.
몇몇 일본 애니의 열성 지지자들은 그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것을 그대로 가져다쓴 것 뿐이라고
감독을 비호하지만, 그렇다면 그것 또한 창작자의 게으름일 뿐이죠.
이야기가 전달하는 울림과 작화의 아름다움에 더해
이런 부분도 더욱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어요.
추천지수: ★★★☆ (3.5)
※이 글은 저의 개인 블로그 '뭐라도 되겠지'(blog.naver.com/hiceo1014)에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