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Ize) 기고
어렸을 때부터 호흡기가 안 좋아 어머니 등에 업혀 일 년 넘게 병원에 다녔다. 모두 민낯을 드러내며 문제없이 다닐 때부터 미세먼지 마스크를 찾아 썼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일 뜨는 기사와 뿌연 안개로 미세먼지가 보이는 듯하다. 여러분에게 닥칠 건강하지만 불편한 미세먼지 마스크의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도록 그간 써온 제품의 연대기를 공개한다.
흔히 접하고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마스크다. 많은 이에게 첫 미세먼지 마스크의 경험을 끔찍하게 남긴 마스크이기도 하다. KF가 높아질수록 더 미세한 먼지를 거를 수 있지만, 그만큼 호흡도 걸러진다. KF99가 가장 좋지만 숨쉬기 어려워 94로 간을 보다 80까지 타협하는 이유다. 그래도 호흡은 편하지 않고, 마스크 안에는 습기가 차고, 아무리 꽉 고정해도 안경에 김이 서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 내 얼굴이 이상한 걸까? 일회용이라는 것도 걸린다. 미세먼지 시대에 새로 생긴 고정비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처음엔 1세대인 퓨어리(Purely)를 썼다. 천 마스크에 교체할 수 있는 속 마스크와 필터 그리고 팬으로 구성돼 있다. 이걸 쓰고 알았다. 내 얼굴이 이상한 거구나. 마스크 밑으로 수염이 자꾸 삐져나왔다. 얼굴에 밀착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팬은 양날의 검이다. 가뜩이나 충전할 게 한 가득한데 이제 마스크까지 충전해야 한다니. 회전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숨쉬기 편하게 쓰려면 소음이 거슬리고 강도를 줄이면 숨쉬는 게 어렵다. 속 마스크와 필터만 교체하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지만 천 마스크는 하관 전용 사우나를 달고 다니는 기분이다. 거기에 무거움도 감수해야 한다.
에어팝(Airpop)은 극세사 외피 마스크와 내피 필터로 구성돼 있다. 이 제품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다. 마스크와 입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게 얼마나 쾌적한지. 다행히 내 얼굴에도 착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대신 입이 튀어나오는 디자인을 불호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원래 앞서 나가는 건 박해받는 일 아닌가. 이제는 길거리에서 에어팝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가끔 콧잔등에 필터가 고정되지 않아 안경에 김이 서리는 걸 제외하고 별 불편함 없이 만족하며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외피를 잃어버렸다. 아직 집에 내피 필터가 한 뭉치 남아 있지만 이미 나는 에어팝으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됐다. 더 뛰어나고 기괴한 마스크를 찾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마스크에도 프로의 세계가 있다. 바로 방진 마스크. 우리가 고작 출퇴근길에 미세먼지 마스크 끼는 거로 엄살 피울 때 누군가는 작업 환경 때문에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일한다. 프로가 쓰는 마스크가 바로 3M 1급 방진 마스크다. 그 중 하나인 8999는 에어팝처럼 입과 마스크 사이에 공간이 있다. 전면엔 더운 공기를 빠르게 배출해 준다는 3M 쿨플로우 배기밸브가 달려 있다. 호흡도 편하고 습기도 잘 차지 않는다. 방진 마스크라니, 쓰고만 있어도 든든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귀에 걸던 전의 마스크와 달리 머리 뒤로 헤드밴드를 넘겨 플라스틱 고리로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나처럼 작은 물건의 블랙홀 같은 이라면 플라스틱 고리 분실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마스크는 총 8시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 마스크보다 가격이 비싸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면 고정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근데 잠깐 사용하고 벗어 두면 그 안에 다시 미세먼지가 들어가 소용없는 게 아닐까. 실제로 벗어둔 방진 마스크를 다시 사용하면 자꾸 코가 간지러웠다. 주문한 100매를 다 쓰며 새로운 미세먼지 마스크의 세계를 찾아 헤맸다.
방진마스크의 시대는 가라. 이제 면체마스크의 시대다. 전이라면 웃음거리였겠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이해할 이가 있을 것 같다. 확실히 2기때 부터 썼던 마스크들 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따갑긴 하다. 내가 ‘관종’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드디어 끝판왕을 찾은 것 같다. 스모그의 나라 영국 제품인 것부터 믿음이 간다. 대형 사이즈가 따로 있다. 설마 서양 사람 기준이라 안 맞는 건 아니겠지, 걱정했는데 딱 맞는다. P100은 필터 교체형 마스크다. 출퇴근 용이라면 3달 정도 필터를 쓸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안에 베는 입냄새로 더 빨리 교체할 가능성이 크지만. 사이즈가 딱 맞는 하드케이스를 따로 구입할 수 있다. 8999 때의 찝찝함이 해결됐다. 지금껏 썼던 마스크 중가장 숨쉬기 편하다. 말을 하며 걷는 건 좀 힘들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 정도는 문제없다. 안경에 김도 서리지 않는다. 얼굴에 정말 꽉 밀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크게 얼굴에 압박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밀착을 위해 헤어밴드 두 개를 머리 뒤로 넘겨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어렵다. 거기에 헤어스타일이 망가질 가능성도 있다. 울프커트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면 이 마스크는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제품을 벗기도 쉽지 않다. 에어팟을 낀 채로 제품을 한 번에 벗으려다 에어팟이 로켓처럼 튀어 올라 황급히 줏어야 할 수도 있다. 경험담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경우엔 한 번 착용하면 잘 벗지 않는다. 그래도 큰 불편함은 없다는 게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슬슬 날이 더워질 때가 걱정된다. 아무리 좋은 마스크를 쓰더라도 맑은 공기를 직접 느끼는것 만큼 쾌적하고 편하진 않으니까.
아이즈 기사 링크: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9031109017266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