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같은 이 마음
메리크리스마스!
어느덧 일하지 않은 나와 육아가 익숙해진지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꿈 많은 20대 후반 직장인 여성에서부터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고 난 이후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난 이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결혼 후, 임신 후, 출산 후 처음으로 그토록 그리웠던 한국에 방문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니 나 빼고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보인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다녔을 때와 똑같이 일을 하고 있고 그들과의 만남도 마치 회식 때 만나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런 괴리감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을때 나를 반기는 아기를 보니 ‘아, 참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국에 와서 시가댁과 친정댁을 왔다갔다하며 머물렀다. 남편이 받은 출산 휴가가 2개월이 조금 더 넘었고 그래서 이 긴 기간동안 한국에 와서 쉴 수 있는 우리로서는 참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아기를 보시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매일 매일을 웃으셨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마치 효도하는 기분에 흐뭇하기도 했다.
우리가 받은 이 귀중한, 한국에서의 두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시가댁과 친정댁이 차로 약 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라 그 일정을 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이슈였다. 양쪽 부모님께서 아기를 적게 보셨다고 아쉬워하시지 않으시도록 양가에 딱 딱 반으로 나누어서 일정을 정했다. 너무 길게 한 집에 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거의 2주 주기로 두 집을 번갈아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부부가 특히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육아와 해외생활로 지친 각자의 몸과 마음에 최대한의 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외에 살다보니 육아나 우리 생활을 도움받을 손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부모님이 네 분이나 계신 한국은 우리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각자가 자신의 집에서 아이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일주일씩 만들었다. 내가 우리 친정댁에서 아기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는 때에 남편은 시가댁에서 마음껏 쉬고, 남편이 시가댁에서 아기와 함께 일주일을 보낼 때엔 내가 우리 친정댁에서 그 기간을 쉬는 것이다.
양 부모님들은 우리의 결정을 다행히 존중해주셨고, 아기에게 우리 중 한 사람이 부재할 때에는 그 빈자리 이상을 더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이 먼저 일주일을 쉬었고, 몇 주를 함께 보내다가 이번 주에는 일주일을 내가 친정댁에서 쉬었다. 이 시간동안 나는 마치 결혼하기 전의 나처럼,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고, 중학교 동창과 만나고, 새벽 늦게까지 깨어있기도 했고, 점심때까지 늦잠을 자기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고 멍때리고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일주일은 정말 달콤했다. 급하게 밥을 먹는 일도 없었고 공공장소에서 혹여나 시끄러울까봐 전전긍긍하며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몇 시간 가지 않았고 난 일주일동안 거의 매일 남편과 아기와 영상통화를 했다. 이미 10달동안 아기엄마였던 나에게 아기가 없는 시간은 뭔가 애매한 즐거움이었다. 하루 이틀은 그러려니 하고 영화도 보고 뒹굴거리며 평안한 여유를 만끽했지만 6일이 지나고 7일이 지나면서 잠자기 전에 아기사진을 보고 자고, 꿈에서도 아기꿈을 꾸고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잘 잤느냐 물으며 아기 사진을 보내달라 졸랐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 지금 혼자 기차에 올라 아기를 보러 시댁으로 간다.
아기를 데리고 있을 때에는 두 세시간의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데, 혼자 있으니 평안함에 너무 좋다. 오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고 가방을 뒤지며 아기용품을 찾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싱글일때는 당연했던 이 고요함이 지금은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니. 그럼에도 나는 아기를 보러가는 지금이 너무 떨리고 설렌다. 물론 아기를 일주일 동안 보면서 야위었을게 뻔한 남편도 걱정이 된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입 안이 헐었다고 하는데..
내가 혼자 친정댁에 있을때 만난 사람들 중 몇은 너무한 부모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우리가 각자 보낸 일주일의 시간이 후회없이 참 소중했다. 혼자 아기 보는 것이 분명 힘들텐데도 힘든 내색 안하고 일주일 동안 아기를 보면서 나보고 더 쉬라고 하는 남편에 대한 감사함과, 해외생활로 힘들었겠다며 맛있는 것 더 챙겨주시고 좋은 곳 데려가 주셨던 우리 부모님의 따스함, 심지어 항상 곁에 있느라 힘들고 피곤하다 생각했던 아기의 존재가 어느새 내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에겐 사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회복할 수 있는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다.
세시간 뒤면 나는 또 아기를 보느라 바닥난 체력으로 빌빌대며 커피를 찾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