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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Feb 08. 2019

왜 나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불편할까

결혼과 동시에 외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일을 그만 둔지 곧 2년이 되어간다.


일을 그만두고부터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생 때 남들이 어서 따라고 해서 일주일 만에 딴 운전면허. 그동안 장롱에서만 있던 터라 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국에서 전혀 쓸모가 없어 ‘정말 운전할 수 있는’ 미국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처음 해보는 된장국, 미역국, 제육볶음을 블로그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하다가 이젠 능숙하게 할 수 있는 2년 차 주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임신과 출산을 해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다.


이제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어가는 아기와 단 둘이서 함께 보내는 미국에서의 낮시간도 나름 익숙해졌다. 나만의 매뉴얼대로 움직이면 남편의 퇴근시간까지는 문제없을 정도다!


미국에서 예쁜 아기의 엄마로, 사랑받는 아내로 이렇게 살다 보면 ‘난 정말 행복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러다가도 말없이 2-3초간 묵묵히 생각하다가 결국엔 이내 고개를 흔들고 ‘아니야..’라는 혼잣말을 나지막이 하곤 한다.


가끔 나를 보고 내 친구들은 부럽다는 말을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이, 그것도 미국에서, 집에서 따뜻하게 아기와 함께 보내는 주부의 하루를 상상해보면 참 동화 같은 삶 같다. 내가 제삼자로 나를 본다고 해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내 지인 중 결혼 이후에도 회사를 몇 년간 다니다가 이제야 그만둔 친구는 드디어 자유야!! 하면서 미래 자신의 평안한 전업주부의 삶을 셀프 축복하기도 한다. 브런치 홈만 봐도 퇴사에 대한 스토리가 넘치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언젠가 올 회사 탈출의 그 날을 기대하며 하루를 산다.


그런데 나는 어쩐 일인지 이 전업주부의 삶이 너무 불편하다. 막상 지금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한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부터 귀찮은 일 투성인데, 남편의 출근을 집 안에서 인사하며 맞는 것이 너무나 아늑하고, 좋아하는 편한 옷을 입고 하루 내내 편한 자세로 지내는 게 정말 좋은데도 나는 그런 나 자신이 이상하게도 참 불편하다.




남편은 나에게 요리 천재라고 말한다. 민망한 말이지만 내가 한 요리는 맛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일어나서 남편과 아기의 밥을  준비할 때에도 이 음식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이른 7시부터 손에 찬물을 묻혀야 한대도 말이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만들면서 요리에도 익숙해져 가고 뚝딱뚝딱 맛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내 자신이 나는 참 뿌듯하고 좋은데,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이렇게 요리를 열심히 하고 가끔은 이 ‘음식들이 진짜 맛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남편과 내 아이밖에 없겠네’ 하는 생각을 한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내가 하는 일들을 A가 알아주고, B가 칭찬하고, 엄마 아빠에게도 자랑하고, 링크드인에도 올리고 그랬는데 지금 내가 한 집안일들과 요리들을, 다시 말하자면 전업주부가 하는 이 ‘일’은 그 ‘일’들 만큼 남들이 알아주거나 스스로가 자랑스레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언젠가, 미국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나와 남편이 나온 대학교의 총장님이 방문하셨던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 반갑게 잠깐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를 기억하면 난 씁쓸하고 다르게 말하면 쓰라린다.

총장님은 우리 부부에게 ‘어디 회사를 다니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이 회사에 대해 말하고 난 뒤, 나는 아기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하다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내 안의 무슨 감정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나는 그 자리에서 꿀 먹은 벙어리였다. 모든 질문은 남편에게 갔고 나는 옆에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남편을 챙겨주며 가끔은 위로하고, 함께 미래를

계획하면서 나와 남편을 빼닮은 사랑하는 아기를 키우는 것은 참 소중한 일이다. 이 삶이 나는 너무 감사한다.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일분일초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주부가 좋다. 그런데 이따금씩 마음 한켠 구석진 곳에서 ‘나는 어디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꿈 많던 스무 살 남짓의 나는 내가 지금의 모습이 될지 알았을까.


나의 엄마는 나에게 ‘딸아, 어서 네가 어떤 상황인지 받아들여야지’라고 하셨다. 그니까 주부, 엄마가 된 나를 직시하고 거기에서 내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말씀이셨다. 근데 엄마가 말하는 그 새로운 삶을 그려보면 나는 이상하게 그림자 같다. 가족의 그림자. 아이러니하게 이런 상황에서 둘째, 셋째까지 낳고 싶은 마음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별 것(일 수도 있지만)도 아닌 게 여자의 삶에선 너무나 별 것이 된다. 그래서 결론은 어쨌든 난 앞으로 이 고민을 계속 해 갈 것 같다. 그러다가 직장을 정말 얻어서 다시 그 빡세고 정글 같은 집단에서 푹 고아져 나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전업주부로의 귀환을 할 수도 있겠고, 혹은 눈코 뜰 새 없이 아이 셋의 (??) 워킹맘으로 살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런 시도를 하지 않고도 이 삶에 만족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 이 중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런 고민의 시간이 잘 싹을 틔워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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