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남편이 있는 주부의 하소연(?)
난 결혼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전업주부다. 결혼 직후 아기를 가지게 되어 예쁜 아기도 함께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내 성격은 무던한 편이다. 예민한 것도, 까다로운 점도 특별히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서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판단한 대로 행동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뒤돌아봤을 때에 후회로 생각될 만한 일들은 별로 없고 나름 성실히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 남편의 성격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의 연애로 인해 대화 때마다 죽이 척척 맞도록 맞춰졌고 삶의 지향점도 비슷하며 가치관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나보다 더 귀찮음을 덜 느끼며 엉덩이가 가볍다(?)는 것만 빼고.
나는 오늘 육아를 반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 시간 반 이상씩 두 번 자야 할 낮잠을 한 시간 십 분으로 한 번만 자긴 했지만. 이건 내가 한 시간 동안 재우려고 별 노력을 해도 안 통했으므로 오늘은 아기가 잠을 자기 싫은 날이었다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두 번의 이유식을 싹싹 비우지 않아도 화내지 않고 아기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완료시켰다. 장난감 정리도 완벽했고 아기를 데리고 산책도 두 번이나 했다. 심지어 모인 빨래가 그렇게 많지 않았음에도 세탁과 건조까지 완료다. 평소에는 정신이 없어 빨래하는 것을 잊고 살아 남편이 도맡아 하는 세탁 프로세스였으므로 이만하면 업그레이드된 꽤 부지런한 주부의 하루임에 틀림없다.
남편이 퇴근하고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고 아기와 놀며 세 식구가 도란도란 퇴근 후 일상을 즐겼다. 나는 오늘의 바쁜 하루를 자랑하듯이 칭찬을 내심 바라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 “세탁기 건조기도 다 돌렸어, 빨래는 내일 내가 갤게, 오늘은 귀찮으니까 ㅎㅎ”
여덟 시 반. 남편이 아기를 재우러 가서 삼십 분 만에 성공시킨 후 안방에서 상봉했다. 아기가 낮잠 잤던 한 시간 십 분밖에 고요하지 못했던 오늘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내 삶의 기쁨, 육아 퇴근!!
마땅히 할 것이 없어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넷플릭스 추천 드라마를 검색했다. 그러다 노트북은 켜 놓은 채 스마트폰으로 또 이런저런 가십거리를 찾아본다. 쉴 땐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좋다 아쉽지 않게. 그러다가 남편이 씻고 나와 빨래 바구니를 찾는다.
- “아, 오늘 세탁하고 건조한 거 거기에 있는데? 내가 내일 갤게.”
스마트폰을 보던 채로 ‘난 너무 쉬고 싶어’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풍기면서 말했다.
부스럭 부스럭
고개를 들어보니 남편이 세탁기 앞에 뒀던 바구니를 가져와선 빨래를 침대 위에 쏟는다. 그리곤 빠른 손으로 빨래들을 개기 시작한다.
- “금방 하니까 오늘 해버릴게. 내일 되면 또 하기 귀찮을 거야”
- “...”
육퇴를 즐기려고 오늘은 정말 하기 싫다고 그렇게도 어필을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귀찮음이라곤 절대로 느낄 것 같지 않은 남편을 보며 곤히 쉬던 무거운 내 한 몸을 일으킨다. 눈 앞에서 빨래를 개는 남편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아내의 선택이었다. 빨래 개기를 마친 후 옷가지들을 제자리에까지 휙 휙 넣어놓고 와서는.
다시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나에게 말한다.
- “오늘 물 별로 안 마셨지, 물 많이 마셔야 해~”
- “응 알겠엉”
대답하는 날 보면서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 “부엌 가기 귀찮아서 지금 안 마시려는 거지?”
- “응”
하자마자 즉시 가서 물컵에 물을 반 채워 가져온다.
귀찮지 않냐고 물어보니 너가 게으른 거 아닐까 하는 소리만 들었다. 육퇴 후의 달콤한 시간에 부지런함을 끼얹은 남편. 해도 해도 참 건장하고 성실하다. 어쩌면 저런 탓에 늘씬하고 길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게으른 것일까, 남편이 (지나치게) 부지런한 것일까? 뭐라 반박은 못하고 눕는다. 참으로 풀리지 않는 난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