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좀 알려줘요
새벽 세 시. 거의 태어날 때부터 다른 방에서 밤새 잘 자왔던 14개월 아기가 소리를 꽥꽥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나와 남편은 ‘여느 때처럼 잠깐 소리 내다가 자겠지..’ 하고 잠에서 깬 채로 아기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오분... 십분.. 칭얼대며 우는 소리는 잠잠해지기는 커녕 점점 더 커져서 거의 비명을 지른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가 되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참다못한 남편이 일어나서 아기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이런 새벽에 남편이 출동하면 십 분에서 삼십 분 내로 아기 재우기 임무는 완수된다. 새벽마다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아기를 재우고 오는 남편은 참 든든하고 멋있다. 정말 슈퍼맨 같다.
그런데 아기 방에 들어간 남편이 갑자기 날 부른다. 언제나 임무 완수에 성공하는 슈퍼맨 남편이 이런 크고 놀란 목소리로 날 부르는 것은 분명 비상사태라는 말이었다.
방에 들어갔다. 아기는 남편에게 안긴 채로 빽빽 울고 있고 남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38.6도. 왜 이렇게 높아? 혹여나 잘못 재었나 다시 재 봐도 체온계 속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비상이다. 돌 즈음에 일주일 동안 고열로 아기가 아팠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한국이었어서 시어머님과 함께 새벽에 응급실에 갔었다. 약을 먹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르는 열. 정말 악몽이었다. 그게 다시 시작이라니, 심지어 의지할 사람도 없이 남편과 나 둘 뿐이다.
돌이 지나면서 약 비슷한 것만 가져가도 어떻게 알았는지 아기는 울며 입을 꾹 다문다. 아동용 타이레놀을 약 먹이는 용도의 작은 주사기에 5ml 넣고 아기 옆에서 괜히 웃으면서 알짱댔다. 역시나 울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남편과 어떤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 난 울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잡고, 남편은 아기의 두 손을 잡았다. 주사기를 아기 입 안의 볼 옆에 넣고 조금씩 주사기를 밀었다. 아기가 이제 컸다고 뿌뿌 불면서 약을 뱉는다. 5ml 중에 한 3ml를 먹였을까... 그래도 다시 약을 또 먹일 힘은 없다. 빽빽 우는 아기를 달래지만 일 년 인생에서 엄마 아빠에게 배신당한 마음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벌써 아기 엄마가 된 지 이 년차.
이렇게 내가 갑자기 엄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어렴풋이 가졌던 내 미래의 모습에선 엄마가 되어도 뭐든지 잘 해내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기가 아플 때마다 나의 그 꿈은 멀어진다, 점점.
엄마라기에는 이렇게 몰라도 되나 싶다. 혹시라도 이번처럼 갑자기 열이 난다던가 피부에 두드러기가 난다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면 눈 앞이 까매진다. 특히나 아기는 항상 모두가 잠든 새벽에 아프다. 그럴 때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는 것 말곤 없다. 한국 엄마들은 이렇게 한대, 아마 이앓이 하느라 우는 걸 거야, 다들 이 시기엔 더 보챈대, 하는 카더라의 말들을 인터넷만 검색해서 믿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이런 나와 같은 엄마들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을 보면 첫째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걱정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잠깐 있던 시기에 아기가 아프면 친정 엄마에게 물어보거나 시어머님에게 물어보거나 빠르게는 바로 병원에 찾아가면 됐었다. 하지만 미국에 있을 때면 무엇보다도 나와 내 남편이 우리 아기의 원앤온리(One and only) 보호자라는 것이 나에겐 부담이고 불안이다.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이 없다는 사실에 책임감이 더 막중해지면서도 내 연약함을 언젠가 마주하게 될 것 같아 매일매일 아이를 키우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엄마면서도 의지할 수 있는 엄마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내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기가 아프기 시작하면 나와 남편은 괜히 스트레스부터 먼저 받았다. ‘왜 열이 나는 거지? 어디에서 감기가 옮은 거지?’ 하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만 계속하면서 스스로에게 더 부담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 아기와 함께한 지 일 년이 넘어가면서 한 명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하나가 ‘괜찮아, 원래 아기 키우는 것은 이래. 스트레스받지 말자, 우린 잘하고 있어.’ 하고 나름대로 부모답게 행동하자면서 꾸중 섞인 위로를 건넨다. 남편이 힘들어하면 내가, 내가 힘들어하면 남편이 그렇게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다시 힘을 낸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아이가 부쩍 커 갈수록 나와 남편도 그만큼 ‘의지할 수 있을 만한 믿음직한 부모’의 모습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어 지금의 초보 엄마 아빠인 우리를 뒤돌아보며 아무것도 몰랐고 시행착오의 반복이었지만 그래도 잘 해왔다고 셀프 칭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